미국이 고강도 상호관세 발효를 현실화하고 미중 갈등 격화가 우려되면서 코스피가 1년 5개월 만에 2300선이 붕괴됐다. 2400선이 무너진 지 불과 이틀 만이다. 위험자산을 피해 안전자산으로 갈아타려는 외국인 투자가들은 9거래일간 코스피에서만 10조 원을 던졌다. 시장에서는 관세정책 축소 신호가 오기 전까지는 추세 회복이 어렵다는 전망 속에 ‘바닥을 알 수 없다’는 공포 심리가 확산되고 있다.
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40.53포인트(1.74%) 하락한 2293.70에 거래를 마감했다. 코스피가 2300선 아래로 내려간 것은 2023년 10월 31일(2277.99) 이후 처음이다.
외국인은 코스피 현물에서만 1조 44억 원, 코스피 200선물 시장에서는 5682억 원을 던지면서 코스피에서만 1조 5726억 원을 순매도했다. 3월 28일부터 이날까지 9거래일 연속 ‘셀코리아’를 이어가고 있는 외국인의 누적 순매도 규모는 10조 2551억 원에 달한다. 코스피에서 외국인 순매도가 몰린 종목은 SK하이닉스(-2809억 원)와 삼성전자(-1439억 원)로 각각 2.65%, 0.93% 하락했다. 제약·바이오 업종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조만간 의약품에 관세를 부과한다고 다시 한번 예고하자 셀트리온(-5.27%), 녹십자(-4.41%) 등 일제히 떨어졌다. 그나마 HD한국조선해양(1.88%) 등 조선주 정도만 선방했다.
코스닥도 전 거래일보다 15.06포인트(2.29%) 내린 643.39에 거래를 마쳐 연중 최저치(651.30)를 또 한번 갈아치웠다. 이날 코스피와 코스닥은 각각 762개, 1342개 종목이 하락했다.
국내 증시가 주저앉은 가장 큰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발 ‘관세 폭탄’으로 전면적인 무역 전쟁 위험이 도래하면서 경기 침체를 우려한 외국인 투자가들이 포트폴리오 재조정에 나섰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대해 기존 상호관세(34%)에 50%포인트의 관세를 추가한 84%를 발효하겠다고 밝혔고 중국도 강력 대응을 예고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국내 증시가 저점을 피할 수 없다고 보면서 2200선이 뚫릴 수 있다는 불안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정면충돌이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한국 등 신흥국을 중심으로 한 외국인 투자가의 패닉셀은 장기화 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정치 변수가 워낙 크다 보니 지수 전망 자체가 의미 없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다른 아시아 국가보다 상대적으로 낙폭이 작았던 한국 증시도 2200선이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염승환 LS증권 이사는 “관세 전쟁이 글로벌 경제의 스태그플레이션(저성장·고물가)을 몰고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면서 “이는 결국 유동성 문제로까지 번져 외국인 투자가들이 현금을 보유하고 주식·채권은 팔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미국발 관세 폭탄이 현실화된 상황에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 인하에 나서지 않는 한 국내 증시를 비롯한 아시아 증시 회복은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선엽 신한투자증권 이사는 “(관세 충격이) 누그러지는 요인이 나와야 하는데 미국과 중국이 다시 협상에 나서거나 한국과 미국 간 협상에 뚜렷한 진전이 없는 이상 (증시 낙폭) 브레이크는 쉽게 걸리지 않을 것”이라며 “시장은 연준이 금리를 인하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 하기 때문에 (연준의 통화정책이) 변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
다른 아시아 국가 주식시장도 일제히 약세를 보였다. 일본 닛케이지수는 전날보다 3.93% 하락한 3만 1714.03에 거래를 마감했고 대만 자취엔지수는 5.79%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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