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고율 관세정책에 글로벌 금융시장이 출렁이는 가운데 미국 내부에서도 균열이 감지되고 있다. 미국의 경기 침체 우려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뜻을 굽히지 않고 오히려 ‘보복에는 더 센 관세’로 맞서며 상황을 악화시키자 트럼프 지지 기반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 안팎에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행정부 내부는 물론 트럼프의 ‘충성스러운 지지자’였던 기업인들과 인플루언서, 심지어 공화당 의원들까지 이례적으로 관세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나섰다.
7일(현지 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는 관세로 인한 피해를 경감하기 위해 ‘수출 업체 세금 공제’가 논의되고 있다. 이는 미국 제조 업체들이 해외시장에서 상품을 판매할 때 보복관세에 따른 피해를 줄여주기 위한 것이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 경제팀 내에서 이 안건을 두고 의견이 갈린 것으로 알려졌다. 세금 공제를 도입하는 것 자체가 트럼프의 관세정책이 미국 기업들에 해를 끼칠 수 있음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모양새가 된다는 이유에서다. 해당 아이디어가 트럼프 대통령과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에게 공식 브리핑되지 않았다는 점도 논란을 키우고 있다. 블룸버그는 “행정부 내에서 이 안건을 두고 벌이는 갈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고문 중 일부가 그의 무역정책 건전성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짚었다.
트럼프와 최강 브로맨스를 자랑했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관세 문제를 놓고 연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익명의 관계자를 인용해 머스크 CEO가 주말 동안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만나 관세정책 수정을 설득하려 시도했으나 실패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한 불만으로 자신의 X(옛 트위터)에 트럼프 관세정책의 설계자인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담당 고문을 비판하는 글을 썼다는 해석도 덧붙였다. 그는 최근 한 네티즌이 ‘나바로는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학위를 보유하고 있다’고 그의 X에 쓰자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는 좋은 게 아니라 나쁜 것”이라며 “자아(ego)가 두뇌(brains)보다 큰 문제로 귀결된다”고 비꼬았다.
‘집 안’ 못지않게 ‘집 밖’도 시끄럽다. 그동안 참아왔던 월가의 기업인·금융인, 그리고 그의 승리에 한 몫을 톡톡히 한 인플루언서들이 관세정책 재검토를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그동안 많은 기업인들은 소송, 예산 삭감 등 트럼프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공개적인 정책 비판을 삼가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반감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으로 읽힌다.
인테리어 업체인 홈디포의 공동창립자이자 오랜 공화당 후원자인 켄 랭곤은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대통령이 잘못된 조언을 받고 있다”며 “베트남 상호관세 46%는 헛소리”라고 작심 발언을 했다. 이어 “중국에 대한 상호관세 34%도 너무 공격적이고 성급했다”며 “그 빌어먹을 관세 계산법을 이해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베선트 재무장관의 멘토인 억만장자 투자자 스탠리 드러켄밀러도 X에 “10%를 초과하는 관세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글을 올리며 의견을 표명했다. 이 밖에도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CEO, 행동주의 투자자 빌 애크먼 등이 반대 입장을 공식적으로 드러냈다.
지난해 대선에서 트럼프 당선에 중요한 역할을 한 미 최대 우파 팟캐스트 운영자 벤 셔피로 역시 “대통령의 국제무역에 대한 비전은 유감스럽게도 잘못됐다”며 “이것은 미국 소비자에 대한 대규모 증세, 역사상 소비자에 대한 가장 큰 증세 중 하나”라고 비판했다.
WP는 최근의 ‘팀 트럼프’ 안팎의 갈등과 불만 폭발 상황을 두고 “트럼프 치어리더들 사이의 균열”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이는 무역 전쟁으로 인한 경제 혼란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지속적인 정치적 상처를 남길 수 있다는 전조”라고 해석했다. 경제적 타격이 클 경우 단기적인 영향을 넘어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기반 및 향후 선거 등에도 손상을 줄 수 있어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