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서 만나기 힘든 전공의들을 드라마에서 만나게 생겼네요.”
의정 갈등 여파로 무기한 연기됐던 드라마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의 방영이 4월로 확정됐다는 소식에 한 의료계 인사가 자조 섞인 말을 남겼다. 의대 입학 정원을 단번에 2000명 늘리겠다는 정부 발표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한 지 1년이 지나도록 출구가 보이지 않는 현실을 꼬집는 표현이다.
올해 1월 치러진 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한 새내기 의사는 269명에 그쳤다. 지난해 배출된 신규 의사 3045명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한발 앞서 의사 면허를 땄던 전공의들의 복귀도 요원하다. 당장 다음 달부터 레지던트 수련이 시작되는데 대상자 9220명 중 199명(2.2%)만 지원했다. 이달 10일부터 진행 중인 전공의 추가 모집도 별다른 소득이 없는 분위기다. 필수 지역 의료를 살리겠다며 추진한 의료 개혁이 아이러니하게도 의사 수급 절벽을 부추기는 격이 됐다.
취재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의료 현장은 참담할 정도다. 교육부가 의대 증원에 반발해 학교를 떠난 의대생들의 휴학을 허용하면서 동맹 휴학에 들어간 1만 8000여 명 모두 진급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현실화했다. 이들이 올 1학기에 복귀하면 7500여 명이, 돌아오지 않더라도 종전보다 1500여 명 많은 4500여 명이 한꺼번에 교육을 받아야 한다. 병원에 남아 전공의들의 공백을 메우던 의료진도 지쳐 나가떨어지고 있다. 정부가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사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소위 ‘빅5’ 병원조차 전문의는커녕 전임의(펠로)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환자들이 겪는 고충은 이루 말하기 어렵다. 암 진단을 받고도 1년 가까이 수술 일정을 잡지 못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입원을 못 해 집에서 직접 주삿바늘을 꽂고 항암제를 투여한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상황이 이런데도 ‘의료 대란은 없었다’는 정부의 주장은 공허하게만 들린다. 의료 개혁에 대한 국민 불신은 임계점에 이르고 있다.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을 시작으로 의정 갈등 해결의 물꼬를 터야 한다. 정부는 현실성 있는 대안과 의료계·학계의 의견을 담을 수 있는 의대 정원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의료계 역시 함께 참여해 건설적인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화가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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