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이 지난해 약 1조 6000억 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거둬 2016년 이후 8년 만에 최대치를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전 세계가 인공지능(AI) 경쟁에 뛰어들어 전력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원전의 중요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17일 원전 업계에 따르면 한수원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7927억 원) 대비 2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6년에 순이익 2조 4721억 원, 영업이익 3조 8472억 원이라는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한 이래 가장 큰 규모다. 순이익 역시 2020년(6179억 원) 이후 최대치인 6000억여 원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수원은 문재인 정부 말기인 2022년에는 620억 원의 순손실을 내 사상 최악의 실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한수원 실적이 고공 행진한 배경에는 지난해부터 오르기 시작한 원전 이용률이 있다. 발전 능력 대비 실제 발전량을 의미하는 원전 이용률은 지난해 기준 83.8%로 2015년 이후 9년 만에 가장 높았다.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전력 거래량에서 원전이 생산한 전기가 차지하는 비중도 15년 만에 가장 높은 32.5%에 달했다. 한국전력이 전기를 살 때 지급하는 정산 단가가 2022년 킬로와트시(㎾h)당 52.5원, 2023년 55원에서 지난해 66.3원으로 대폭 늘어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한수원의 지난해 전력 판매액은 전년보다 2조 5000억 원 넘게 증가한 약 13조 원에 달했다.
원전 업계에서는 지난해 원전 수출 호조세에 힘입어 올해에도 한수원이 견조한 실적을 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소 24조 원 규모의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2기 건설 사업이 다음 달 본계약 체결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한수원이 수주한 루마니아 체르나보다 원전 1호기 설비 개선 사업도 5월께 첫 삽을 뜰 예정이다. 사업이 진행되는 60개월 동안 한수원·한전KPS·두산에너빌리티 등 ‘팀 코리아’는 1조 2600억 원가량의 일감을 얻을 것으로 추산된다. 한수원 관계자는 “이번 프로젝트를 발판으로 향후 경수로 원전에서도 유사한 사업을 수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기복 한국원자력학회장은 “한수원은 원전 이용률을 90% 이상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 전력 판매 실적 역시 지난해보다 더 개선될 여지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최대 원전 시장 중 하나인 유럽에서 수주 규모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은 변수다. 앞서 한수원과 미 원전 기업 웨스팅하우스는 지난달 중순 원전 기술 관련 지식재산권 분쟁을 종료하고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 협력하기로 합의했는데, 유럽 시장에 한수원이 단독으로 진출할 수 없다는 것이 주요 합의 내용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한수원은 지난해 말 스웨덴 전력 회사 바텐폴이 발주한 원전 건설 사업에서 철수한 데 이어 이달 초에는 슬로베니아 크르슈코 원전 신규 건설 사업인 JEK2 사업 타당성 조사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JEK2는 크르슈코 원전 인근에 최대 2400메가와트(㎿) 규모의 대형 원전을 추가 건설하는 사업으로 체코 원전 수주 규모가 1000㎿당 2000억 코루나(약 12조 원)였음을 고려해 단순 추산하면 최대 약 29조 원대 규모의 수주전에서 손을 뗀 셈이다.
향후 정치 지형도 변수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정국의 주도권을 쥔 야당이 원전 산업에 회의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더불어민주당은 원전 규모를 축소하지 않으면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4~2038년)을 확정하기 위한 국회 보고를 받지 않겠다며 원전 생태계 축소를 예고한 상황이다. 이 회장은 “간신히 되살아난 원전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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