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수출의 21%(2024년 기준)를 담당하는 등 우리 경제에 기여도가 높은 외국인투자기업이 추가 투자 계획을 접거나 엄두도 못 내는 이유는 경쟁국 대비 부족한 정부의 지원 여건에 있다. 자국 내 생산 시설과 연구개발(R&D) 투자를 끌어내기 위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 보조금 재협상을 시사하거나 동남아시아·일본·인도 등이 글로벌 공급망에 참여하기 위해 막대한 보조금 등 각종 지원 혜택을 제공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개선이 시급한 현실이다. 해외 기업 및 투자를 끌어들인 유인이 줄면서 한국에 대한 직접적인 투자는 물론 외투기업과 협업하는 수백 개의 중소기업도 함께 고사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4일 방문한 인천경제자유구역 공항물류단지 내 스태츠칩팩코리아는 단지 내 대표적인 외국인투자기업으로 세계 반도체 후공정 3위 업체다. 길 하나를 사이로 제1 공장(11만 ㎡)과 제2 공장(12만 ㎡ )을 가동 중이다. 2016년 완공된 제2 공장은 올해 완공을 목표로 증설 작업이 한창이다.
이곳에서 만난 스태츠칩팩코리아 관계자는 “2015년부터 1~2공장에 투입된 외자 유치 금액만 18억 달러(2조 6000억 원)가 넘는 등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매년 2000억~3000억 원을 투자하고 있다”며 “올해도 반도체 클린룸 건설 등으로 3000억 원 이상을 투자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투자 여건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스태츠칩팩코리아는 투자에 어려움을 겪는 요인으로 글로벌 경쟁국 대비 부족한 정부 지원 정책과 외투기업에 대한 역차별을 꼽았다. 그는 “매년 3000억 원을 투자하고 한국 직원도 4700명이나 되는데 외투기업이라는 이유로 국책 과제 선정 등 각종 지원에서 밀리고 있다”며 “지금까지는 높은 기술력으로 투자를 끌어오고 있지만 경쟁국들이 기술력까지 빠르게 따라오고 있어 언제 한국행 투자금이 발길을 돌릴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반도체 등 첨단 기술 분야에 대한 자국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미국·일본 등과 같은 국가들은 정부가 직접적으로 외투기업에 대해 보조금 등 지원을 하고 있고 베트남·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도 반도체, 인공지능(AI) 산업 관련 외국 기업을 포함해 투자 비용의 최대 50%를 지원하는 법안까지 만들어 해외투자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스태츠칩팩코리아 관계자는 “경쟁국들이 각종 혜택을 들고 나오며 해외 기업 및 투자금 유치에 혈안이 되면서 해외 투자가들이 ‘한국 투자 시 세제 지원이 없냐’고 대놓고 물어보는 일이 부쩍 늘었다”며 “이와 달리 한국은 그나마 있던 세액공제제도마저 사라지면서 해외 투자가들이 베트남·대만 등과 투자 관련 저울질을 많이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외투기업에 대한 역차별도 한몫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앞서 인천시는 앰코테크놀로지코리아와 스태츠칩팩코리아 등 반도체 패키징 분야 글로벌 2~3위 기업을 앞세워 산업통상자원부의 반도체 특화단지 유치에 도전했지만 2023년 탈락 통보를 받았다. 당시 인천시는 글로벌 외투기업과 이와 연계된 1000여 개의 협력 업체와 함께 인천을 반도체 첨단 패키징 분야의 메카로 만들겠다며 적극 유치에 나섰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대형 반도체 업체가 있는 용인·평택·구미 등에 밀렸다. 스태츠칩팩코리아 관계자는 “당시 반도체 특화단지 관련 정부 관계자에게 ‘한국 기업도 아니고 결국 미국·싱가포르 회사인데 왜 지원을 해줘야 하냐’는 답을 들었다”며 “외투기업에 대한 차별적 시선에 글로벌 2위 업체인 앰코테크놀로지가 국내 투자 계획을 접고 베트남으로 간 것처럼 한국으로 유입되는 신규 투자는 물론 한국에 정착한 외투기업들도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실제 지금까지 견고했던 외투기업의 한국 투자는 지난해부터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있다.
지난해 외국인직접투자는 신고 기준으로는 345억 70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최대 실적을 달성했지만 한국에 실질적으로 도착한 금액은 147억 7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24.2% 줄었다. 당초 한국에 투자를 하려고 했다가 본사 사정 및 글로벌 공급망 재편 움직임에 투자를 보류했거나 다른 지역으로 투자를 돌린 것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국가별로 보면 미국은 지난해 전년 대비 14.6% 줄어든 52억 4000만 달러(신고 기준)를, 유럽연합(EU)은 51억 달러로 18.1% 줄었다. 반면 중국의 투자는 57억 9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266.1% 급증했다. 업계에서는 미국과 EU의 리더십 교체 등 정치적 변화에 따른 관망세가 작용한 것과 함께 한국의 투자 매력도가 줄어든 영향으로 보고 있다. 대신 중국은 미국에 대한 직접적인 수출이 막히는 것을 대비해 한국을 수출 우회 기지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면서 급증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한국에 정착한 기존 외투기업의 투자 또한 줄고 있다. 외투기업에 대한 신규 투자(신고 기준)는 증가하는 반면 한국에 뿌리를 내린 외투기업이 증설 또는 신공장 건설에 주로 사용되는 증액투자(이미 발행한 주식 또는 지분을 취득 및 미처분이익잉여금 재투자)의 경우 지난해 139억 1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17.7% 감소했다. 특히 제조업 분야에서의 증액투자는 27.5% 감소하는 등 증감 폭이 더욱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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