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25% 관세를 내달 12일 시행한다고 밝힌데 이어 자동차 관세부과도 “아마도 4월 2일쯤” 이라고 말했지만 반도체 관세에 대해선 추가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철강과 자동차 관세와 달리 반도체 관세는 미국에 별 실익이 없이 미국 기업들만 힘들게 하고 물가 불안만 조장할 것이란 분석에 힘이 실리는 형국이다. 반도체 산업이 가진 복잡한 공급망 구조 때문에 트럼프 정부가 의도하는 정책 효과를 거두기도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이 반도체 관세 부과를 검토하더라도 미국 기업들이 누릴 이득이 제한적이고 불분명해 실제 부과 방안을 도출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예외없이 25% 부과한다는 발표를 하면서 "자동차, 반도체, 의약품 관세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는 다분히 미국 기업을 보호하거나 외국 기업의 미국내 투자를 늘리기 위한 것인데 이런 목적을 반도체에선 거두기 쉽지 않은 것이다. 실제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 등이 생산하는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미국 내 대체품이 사실상 없다.
미국 내에서 생산되는 메모리는 군사용 등 일부 특수 목적용 제품을 제외하면 전무한데다 미국 메모리 업체인 마이크론은 아이다호주에 공장을 짓고 있지만 준공 후 양산까지는 먼 얘기다. 마이크론은 주력 제품을 일본과 대만 공장에서 생산하는데 대만 타이중, 타오위안 등에서만 D램의 65%를 만들고 있다.
반도체 산업의 경우 특히 공급망이 매우 복잡해 미국 정부의 의도대로 정책 효과가 날 지도 미지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력 제품이자 인공지능(AI) 컴퓨팅에 필수인 고대역폭메모리(HBM)만 해도 수요처인 미국 빅테크로 바로 가지 않는다. 대신 HBM과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패키징하는 대만 TSMC로 갔다 이후 서버 제조 업체 등을 거쳐 미국으로 들어가는 구조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직수출되는 반도체는 현재 전체 수출의 7%에 불과하다.
자국 내 대체제가 없는 만큼 관세 인상은 결국 미국 수요자들의 비용 부담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글로벌 생산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HBM의 수요자도 엔비디아, AMD, 아마존, 구글 등 미국 기업이다. 미국 정보기술(IT) 디바이스 제조사들도 국내 첨단 D램의 주요 고객이다.
조중휘 인천대 임베디드시스템공학과 교수는 “미국 내 자체 생산하는 반도체가 많지 않아 높은 관세는 자충수가 될 것”이라며 “결국 자국 소비자나 기업에게 비싸게 팔릴 수 밖에 없어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되는 결정”이라고 분석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미국이 관세 정책을 꺼내든 건 무엇보다 TSMC 때문으로 파악된다”며 “현재 TSMC는 첨단 반도체의 대부분을 생산하고 있는데 이들의 미국 생산 비중을 늘리도록 유도하고 그러면서 반도체 보조금도 아끼려는 목적이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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