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당선 이후 추풍낙엽처럼 하락하던 국내 증시는 이번주 모처럼 반등에 성공했습니다. 삼성전자(005930)의 10조 원 규모 자사주 매입 소식이 온기를 퍼뜨리면서 4만 원대로 내려앉았던 삼성전자 주가는 5만 원대를 회복했고, 엔비디아의 3분기 실적 발표도 국내 증시에 별다른 영향 없이 일단은 지나간 듯 보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뚜렷한 주도주가 없는 국내 시장은 기운이 없습니다. 투자자들의 국장 탈출 행렬은 이 시간에도 진행 중인 반면 미국 증시는 뜨겁고 비트코인은 10만 달러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죠. 이쯤되니 오를대로 오른 미장에 진입하는 것도 주저하게 되는데요.
한편 LG(003550)그룹이 지난 22일 각 계열사별로 자사주 소각 및 중간배당 도입 등 밸류업 공시를 동시에 쏟아냈습니다. 시장에서는 이번 발표를 계기로 재계의 밸류업 동참 기조가 확산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데요. 거래소가 내달 20일 ‘코리아밸류업지수’의 특별 종목변경을 예고한 가운데 정부가 띄운 밸류업이 국내 증시 상승의 새로운 트리거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오늘 선데이 머니카페에서는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을 둘러싼 다양한 시각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거래소, 내달 20일 밸류업지수 특별 편입기업 발표
한국거래소가 다음 달 20일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를 이행한 기업을 대상으로 ‘코리아밸류업지수’ 특별 편입(리밸런싱)을 실시한다고 18일 밝혔습니다. 다음 달 6일까지 공시를 이행한 기업들에 한해 신규 편입 심사를 거쳐 최종 편입 기업을 발표할 계획입니다. 단 이번 리밸런싱은 기존 종목의 편출 없이 신규 편입 작업만 실시하기로 했습니다. 이에 따라 밸류업지수 구성 종목은 내년 6월까지 한시적으로 100개를 초과할 전망입니다.
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15일 기준 밸류업 공시를 이행한 기업은 총 32개사, 연내 본공시를 예고한 기업 수는 15개사인데요. 특별 편입 종목 수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최소 한도로 실시할 계획입니다. 거래소 관계자는 “향후 심사 대상의 규모와 추이를 고려해 종목 수를 확정할 것”이라며 “밸류업 정책 목적 조기 달성을 위한 특별 변경임을 감안해 많은 수의 기업을 편입하기보다는 연계 상품 운용에 불편함이 없는 범위 내에서 이뤄질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상법 개정 멈춰달라”…16개 그룹 긴급성명
한편 정치권에서 ‘이사의 충실의무’에 대한 상법개정 논의가 활발해지자 주요기업 사장단이 이례적으로 한 자리에 모여 공동성명을 냈습니다. 지난 21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 모인 삼성, SK(034730), 현대차 등 주요 16개 그룹 사장단은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더불어민주당의 상법개정안에 대해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소송 남발과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으로 이사회의 정상적 운영이 어려워지고 신성장동력 발굴에 애로를 겪게할 것”이라며 “결국 기업의 경쟁력이 크게 훼손되고 우리 증시의 ‘밸류 다운’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주요 그룹 사장단이 한 자리에 모인건 지난 2015년 중동 메르스 등 대외악재가 이어졌을 때 이후 9년여만인데요. 단체행동을 할만큼 절박하다는 뜻이겠지요.
논란의 중심이 된 상법 조항은 제 382조 3 이사의 충실 의무로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명문상 ‘회사’를 위해 일하라고 돼있다보니 기업이 계열사간 합병이나 주식교환 등 자본거래를 할 때 일반 주주들의 이익보다는 총수 일가의 이익이나 일부 이해관계에 따라 이사회가 거수기 역할을 하며 다수 주주들이 피해를 입게된 사례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기업은 주주환원책보다는 오너일가의 경영권 방어가 최대 관심사일 때가 많고 여기에 고율의 상속세는 주가 부양 의지를 꺾는 또다른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즉, 정부가 추진하는 밸류업이 진정한 기업가치 상승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상법 개정을 통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가 포함돼야 한다는 것이죠.
이러한 배경 속에서 사장님들의 단체 행동에 일부 투자자들은 조롱 섞인 비판을 보내고 있습니다. 밸류 다운을 운운한 16개 기업 중에서 정부의 밸류업 정책에 화답해 주주환원책을 발표한 곳은 단 3곳 뿐이기 때문입니다.
밸류업 공시 쏟아낸 LG...재계로 확산될까
이같은 지적을 의식해서였을까요. 바로 다음날인 22일 LG그룹 내 다수 계열사들이 대규모의 주주환원책을 동시에 쏟아냈습니다. (주)LG를 포함한 주요 계열사 7곳이 자사주 소각부터 배당 확대, 실적 개선 등 다양한 주주환원책을 내놓은건데요.
먼저 (주)LG와 LG생활건강(051900)은 각각 5000억 원, 3000억 원어치를 전량 소각할 계획입니다. 여기에 (주)LG는 배당성향을 기존 50%에서 60%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중간배당 정책도 새롭게 도입키로 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373220)과 LG화학(051910)은 매출 확대를 최우선 목표로 내세웠고 2025년 연간 흑자 전환을 노리는 LG디스플레이(034220)는 수익성 개선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LG유플러스(032640)와 LG이노텍(011070)은 자기자본이익률(ROE) 제고를 1순위 밸류업 정책으로 꼽았고요.
이처럼 그룹사 전체가 동시에 밸류업 계획을 발표하자 주가도 화답했습니다. 이날 그룹 내 시가총액이 가장 높은 LG에너지솔루션은 전날 대비 4500원(1.12%) 오른 40만 5000원에, LG생활건강은 3.66% 상승한 32만 5500원에 각각 장을 마쳤습니다. 이어 LG유플러스(1.93%), LG화학(1.19%), LG(0.79%) 등도 상승했습니다.
하룻새 5% 급등한 SK하이닉스(000660)...밸류업 기대감↑
한편 이날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가 5거래일만에 상승 전환하며 하룻새 4.68% 상승률을 기록했는데요. 뚜렷한 호재가 없던 상황에서 주가가 급등하자 시장은 SK하이닉스도 조만간 밸류업 공시를 내놓을 것이란 기대감이 작용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SK그룹은 지난 21일 SK스퀘어(402340)가 2000억 원 규모 자사주 소각 등을 공시하는 등 SK그룹 계열사 중 현재까지 밸류업 계획을 공시한 기업은 SK, SK텔레콤(017670), SK스퀘어 등 세 곳입니다.
특히 SK하이닉스는 올해 고대역폭메모리(HBM) 호황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한 만큼 향후 배당 정책을 과거보다 한층 더 강화한 주주환원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큰데요. SK하이닉스 관계자는 “2022년부터 올해까지 3개년 주주환원 정책을 실시해왔고 올해가 끝나는 시점이라 (새로운 정책을) 검토하고 있다”며 “다만 아직까지 결정된 건 없다”고 말했습니다.
시장에서는 LG그룹을 시작으로 밸류업 웨이브가 연말 다른 대기업으로 퍼져나갈 것이란 기대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선엽 신한투자증권 이사는 “재계에서 그룹의 대표 계열사들이 같은 날 대거 밸류업 공시를 한 것은 LG가 사실상 처음”이라며 “LG그룹의 이번 발표를 계기로 재계의 밸류업 동참 기조가 확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증시 주변의 유동성 부족 등으로 한국 증시가 부진한 상황에서 국내 주요 그룹의 주주 친화적 정책 발표는 분위기 반전에 도움을 줄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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