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재의요구권(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무분별하게 남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국회와 협치를 통해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장효훈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은 지난달 12일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의 역사와 행사 이유’라는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법률안 거부권 제도는 권력분립 원칙에 따라 대통령이 국회를 견제할 수 있도록 고안된 제도다. 헌법 제53조에 따르면 국회가 의결한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장 연구관은 보고서에서 거부권 행사 유형을 ‘법안이 헌법에 위배되는 경우’와 ‘정책적으로 부당한 경우’로 구분했다. 정책적으로 부당한 경우는 ‘재정상 집행이 불가능한 경우’와 ‘대통령의 정책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로 재분류했다. 이같은 유형에 따라 장 연구관은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5월 취임 이후 올 8월 7일까지 ‘헌법 위배’를 이유로 8차례, ‘정책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유로 7차례 거부권을 행사했다고 분석됐다. 헌법적 사유로 거부한 법안에는 채상병 특검법 2건과 김건희 여사 및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 등이 포함됐다. 야당이 강행 처리해 권력분립 원칙을 어겼다는 이유가 대부분이었다. 정책적 사유로 거부한 법안에는 양곡법, 방송3법 개정안 등이 포함됐다.
장 연구관은 제한적 해석론을 통해 대통령 거부권 행사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언급했다. 제한적 해석론은 “대통령은 법률안을 거부할 때 국회의 논의를 존중해야 하며, 정당한 근거가 없다면 거부를 자제해야 한다. 특히 정책적 사유로 거부권을 행사할 때 더욱 그렇다”고 본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남용할 경우 국회는 대통령의 정책에 부합하는 법안만 통과시킬 수 있어 삼권분립 원칙이 훼손된다는 취지에다. 다만 헌법에는 거부권 행사에 관한 아무런 요건이 없어 대통령이 사실상 제한 없이 행사할 수 있다는 견해도 보고서에 기재됐다.
장 연구관은 “거부권 남용을 막기 위해서는 대통령 스스로가 이송된 법률안에 대해 국회의 논의를 존중하고 거부권 행사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법률안을 헌법적 사유로 거부할 경우 위반 조항이나 헌법상 원칙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법리적으로 설명해야 한다”며 “정책적 사유로 거부할 경우 법률안의 문제점을 논리적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헌법재판연구원은 헌법재판소 산하 연구기관으로, 헌법재판에서 다뤄질 수 있는 쟁점을 미리 연구해 헌재의 판단을 보조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