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부모님의 지인 중에 ‘보험 아줌마’가 늘 몇 분은 계셨던 기억이 있다. 보험 설계사는 결혼과 출산·육아로 일을 쉬었다가 어느 정도 아이가 큰 뒤 다시 돈을 벌기 위해 일터로 나서는 중년 여성들에게 자본이 없어도, 경험이 부족해도, 그리고 배움이 모자라도 충분히 도전할 만한 직업이었을 것이다. ‘보험 아줌마’라는 직업을 얕보는 사회적 인식이 생긴 것도 진입 장벽이 낮은 특성이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보험 설계사라는 직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보험 설계사의 시작은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보험사들이 식민지인 조선에 진출하면서 ‘보험 모집인’이라는 직업이 처음 등장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보험 설계사는 계속 있어왔다. 지금처럼 교육과 시험을 거쳐 제도적으로 설계사를 뽑는 시스템은 1970년대부터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의 보험 설계사 역사가 이때부터 제도적으로, 공식적으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1970년대를 기점으로 봐도 50년 가까이 이어진 직업이 바로 보험 설계사인 셈이다.
요즘 보험 설계사들은 ‘역대급 대접’을 받고 있다. 새로운 회계제도가 도입되면서 중요해진 보험계약서비스마진(CSM) 지표는 장기 보장성 보험을 팔았을 때 유리하게 산출된다. 장기 보장성 보험의 주요 판매 채널은 바로 설계사다. 좋은 경영 성과를 내기 위해 보험사들과 법인보험대리점(GA)은 경쟁적으로 우수 설계사를 영입하고 있다. 우수 설계사 스카우트 과정에서 편법을 동원한 수수료 지급, 과도한 인센티브 등 과열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고객이 원하는 상품이 아니라 설계사가 원하는 상품을 만들고 있다”는 한 대형 보험사 임원의 자조 섞인 발언은 현재 업계에서 벌어지는 ‘설계사 모시기’ 경쟁을 단편적으로 드러내는 말일 것이다.
설계사 영입을 위해 과도한 수수료 등을 지급하면 그 부담은 보험사와 소비자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 판매 경쟁이 붙으면 불완전 판매도 늘어날 수 있다. 이 때문에 금융 당국도 ‘보험개혁회의’를 출범시켜 설계사의 영업 관행과 판매 채널의 문제점 등을 주요 과제로 챙기기로 했다. 당국이 나선 만큼 어떤 식으로든 후속 조치가 따라올 것으로 보인다. 보험 설계사는 ‘50년 만의 가장 귀하신 몸’으로 르네상스 시대를 맞고 있다. 하지만 과도한 경쟁으로 소비자들의 신뢰를 잃어버린다면 역대급 대우는 금방 사라지고 말 것이다. 당국의 규제에 앞서 스스로 변화하려는 노력을 하고 지속적으로 실천해야 지금의 귀한 대접이 앞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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