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에서 ‘단일’로 노선이 변경된 전남권 의과대학 설립 후보지를 놓고 전남도가 의대 설립 주도권을 상실할 것으로 보인다. 당초 동(순천)·서(목포) 갈등을 종식시키기 위해 ‘통합 국립의대’를 고수했던 전남도는 정부의 방침에 따라 ‘단일 국립의대’로 급선회하면서 최선의 방법으로 ‘공모’를 택했지만, 이미 행정 신뢰도는 깨져 버린 만큼 대안 찾기가 시급해 보인다. 줄기차게 ‘공모는 안된다’며 강력하게 독자 행보(단일 전남권 국립의대) 의지를 보이고 있는 순천(순천대)을 설득 시키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전망이 나온다.
◇법적 권한 없는데…"글로컬 처럼 정부가 정해야"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전남권 국립의대 후보지 선정과 관련해 목포에 이어 지난 18일 이병운 순천대 총장, 노관규 순천시장, 정병회 순천시의회 의장과 만나 국립 의과대 추천 대학 선정 절차를 설명하고 의견을 들었다. 이 자리에서 전남도, 순천대, 순천시, 순천시의회는 5월 대학의 입시요강 발표 전에 전남 소재 국립대학의 의과대학 정원을 배정 받기 위해 함께 노력을 다짐했지만, 후보지 선정 문제 만큼은 극명하게 갈렸다.
김영록 지사는 “정부가 전남도에 요청했는데도 다시 정부에 대학 선정을 넘기면서 시간을 허비한다면, 의대 신설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며 “순천대가 정부 추천대학 선정 절차에 참여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 주면, 전남도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 가장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 가겠다”고 말했다.
반면 순천대는 “전남도는 대학을 정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으며, 의대설립 절차는 법적 권한이 있는 교육부에서 진행해야 지역의 갈등을 줄일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노관규 순천시장도 김영록 지사와 면담 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적 권한이 없는 전남도가 손을 떼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종합적인 대안을 제시했다”며 “전남도는 도 차원에서, 순천시와 대학은 순천식으로 중앙정부를 열심히 설득하기로 했다”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의과대학은 순천대학으로 오는 게 순리에 맞다”고 거듭 강조했다.
◇“행정 불신은 전남도가 자초 했다”
그렇다면 김영록 전남지사의 ‘전남도가 주도하는 공모’ 방식에 순천을 비롯한 동부권 일대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앞서 언급했듯 전남도 행정에 대한 불신이 전반적으로 깔려 있다.
박병희 순천대 의과대학추진단장은 “글로컬 대학의 경우 목포대나 전남대가 떨어졌지만 교육부가 주도했기 때문에 공정성 우려가 적어 모두 수용했다”며 “하지만 의대 신설 문제는 같은 지역 내 이해관계가 얽힌 상황에서 전남도가 어떻게 공정하게 진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특히 순천시청 안팎에서는 전남권 의대 후보지를 놓고 ‘전남도에서 목포대를 염두하고 있다’는 뒷말이 돌고 있다. 실제 지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유치전에서도 전남도는 균형발전을 운운하며 사실상 순천을 배제한 고흥을 염두 하며 행정력을 집중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천은 차별화된 정주여건을 무기로 한 전략적 접근에 행정력, 노관규 순천시장의 높아진 정치적 입지로 전남도와의 정책 대결에서 판정승을 거둔 사례가 있다.
여기에 글로컬대학 선정과정에서도 전남도가 사실상 목포대를 밀어줬다는 괴소문(?) 마저 무성하게 돌고 있다. 참고로 이마저도 광주·전남권에서 유일하게 순천대가 글로컬30에 선정됐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2조에 따라 전남도는 의대 공모를 추진할 권한이 없으며, 그 결과 또한 법적 효력이 없다. 공모를 통해 누가 선정되던 간에 또 다른 갈등이 불거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순천이 ‘단독’을 내세운 명분이다.
◇범시민 운동 불사하겠다는 어벤져스
전남도는 여전히 ‘공모’를 통해 후보지를 선정 하는 것은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전남도는 지난 3월 14일 윤석열 대통령은 전남 민생토론회에서 “순천대와 목포대 중 어느 대학에 의대를 둘 것인지 전남도가 정하고 의견 수렴해서 알려주면 추진하겠다”는 발언을 상기시킨다. 김영록 전남지사는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화합과 상생이라는 대승적 차원에서 단일된 목소리를 내자”며 “공모는 의대 설립의 시작 단계일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전남도의 줄기찬 설득에도 순천을 비롯한 동부권 일대 정치권과 이제는 순천시민들까지 나서 ‘단독’에 대한 목소리가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순천은 4·10 총선에서 김문수 당선인(민주당)과 순천의 두 번째 국회의원으로 불리고 있는 천하람 당선인(개혁신당), 인요한 당선인(국민의힘 위성정당인 국민의 미래) 등이 포함된 여야 어벤져스를 구축하며 전남권 국립의대 독자 노선에 힘을 싣고 있다. 특히 순천을 중심으로 한 김문수 당선인 등 정치권에서는 “동부권 전체가 뭉친 범시민운동도 불사 하겠다”는 초강수 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이에 김영록 전남지사가 ‘공모’를 고집할 경우 오히려 정치적인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바닥을 보여 버린 행정 신뢰도에 정치적으로 실타래까지 꼬여버린 만큼 지금이라도 정부를 설득해 전남도 주도가 아닌 정부 주도로 ‘순천이냐, 목포냐’ 선택을 할 수 있게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참고로 행안부의 지난 4월 기준 주민등록 통계 자료에 따르면 동부권 인구 수는 82만 3600여 명으로 서부권 54만 8300여 명보다 월등히 인구비중이 높다.
이처럼 순천이 전남권 국립의대 단독 의지가 강하고 뒤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여 목포대도 뒤따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34년 만에 잡은 호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전남도의 발 빠른 판단과 정치력이 시급해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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