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중국·일본·유럽연합(EU) 등 글로벌 경제 전쟁의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해외 공관 주재 상무관들이 “보호무역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산업 정책의 시대가 됐다. 통상 정책조차도 산업 정책을 지원하는 수단으로 운영되는 세계사적인 대전환기에 있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차기 미국 대통령과 EU 집행위원장이 누가 되더라도 반도체 같은 첨단산업 제조설비를 자국 내 유치하려는 보조금 지급 등의 파격적인 움직임은 한동안 이어지리라고 내다봤다. 사회는 김영필 경제부장이 맡았다.
-사회=먼저 글로벌 통상정책 기조에 대해 말씀해달라
△김성열 주미국대사관 상무관=세계사적인 전환기에 있다고 본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미국이 일단 자유무역 등 전통적인 글로벌라이제이션(세계화)에 대해 회의적이다. 그다음에 제조업의 쇠락, 중산층의 어려움, 중국의 부상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서 보호무역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산업 정책의 시대가 됐다. 통상정책조차도 산업 정책을 지원하는 수단으로 운영되는 기조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이 될 거라고 진단한다.
△최세나 주벨기에EU대사관 상무관=EU는 처음에 생길 때 통상정책과 경쟁정책 두 가지만 EU가 전권을 가졌다. 나머지 산업·에너지·보건 정책 등은 각 회원국들이 전권을 가졌는데, 코로나19 이후 공급망이 붕괴되면서 탄소국경조정제도·핵심원자재법·탄소중립산업법 등 산업 규제 법안 등 산업 규제 법안이 많이 나왔다. 6월 유럽의회 선거, 연말 집행위원장 선출 이후에도 이런 기조가 더 강해질 걸로 전망한다.
△이재근 주중국대사관 상무관=미중 전략 경쟁이 시작됐는데 굉장히 길게 갈 것 같다. 최근 양회 결과를 보면 경제구조 체질개선, 자립적인 공급망 확대를 재확인했다. 작년 대비 달라진 건 안정에서 성장 쪽으로 방점을 찍었다는 거다. 경제성장률은 5% 내외를 제시했는데, 전문가들이 예상한 4% 중반대를 웃도는 목표치다. 올해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펼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서가람 주일본대사관 상무관=일본은 우리만큼이나 수출·자유무역을 중시하는 나라다. 자유무역을 기반으로 하는 자유무역협정(FTA)나 경제동반자협정(EPA)은 거의 다 마무리했고 거기에는 별로 힘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대부분 경제안보나 공급망 강화, 아니면 탄소중립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사회=각국이 반도체 보조금 지급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현지에서 본 느낌은
△서 상무관=일본은 반도체 완성품 공장들이 거의 사라졌다. 위기발생시 모든 산업이 정지될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또 하나는 소부장 기업들이 해외로 자꾸 나가게 돼 국내 산업 기반 자체가 없어진다는 두가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일본은 대만의 TSMC를 유치하는 데 4700억 엔이라는 전례 없는 현금을 지원했다. 경제산업성이 적극적이었으나 재무성은 상당히 반대한 걸로 안다. 마지막 기회라는 판단 하에 경제산업성 출신 의원들이 나섰다.
△이 상무관=중국은 레거시 반도체 쪽에서 경쟁력을 많이 갖췄다. 산업 생태계도 잘 조성돼 있다고들 한다. 그 안에서 선순환적인 투자들이 이뤄지고 있다. 실제로 업체들도 굉장히 많고 그동안 여러 지원들도 해왔다. 장기적으로는 레거시 반도체 쪽에서는 확실히 경쟁력 있으리라 보인다.
△최 상무관=반도체법을 만든 취지가 EU 역내에 첨단 반도체 제조시설이 취약해서였다. 제조시설이 없다시피했다. 디자인과 장비에는 강점이 있어서 우리나라에도 제조시설 유치를 위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김 상무관=역사적인 실험을 하고 있다. 칩스앤사이언스액트 보조금은 500억 달러가 넘는다. 제조 부분만 해도 390억 달러다. 미국은 그동안 반도체 제조업 기반이 많이 약화됐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반작용이라고 본다. 제조업을 일으켜야 했기 때문에 막대한 규모의 보조금이 필요했던 것이다.
-사회=우리나라가 벤치마킹할 부분은 없나
△김 상무관=우리나라는 아시다시피 30~40년 동안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왔다. 전력·용수 등 인프라부터 민관이 함께 고민했다. 반도체 생태계 조성, 인력 양성도 종합적인 지원 패키지를 제시해왔다. 미국과는 상황이 다른 면이 있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우리가 해보지 않은 캐시 그랜트(현금 지원)는 고민해 볼 부분은 있겠다.
△최 상무관=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이후 그쪽으로 투자가 유출되는 걸 막기 위해 ‘다른 나라의 어떤 보조금을 받을 예정이면 거기에 상응하는 만큼 우리도 (보조금을) 주겠다’는 것까지 포함한 강력한 보조금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상무관=중국은 2025년까지 핵심 산업에서 소재나 부품 자급률을 75%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양회에서 나온 것도 보조금 외에 과학기술도 집중하겠다는 거다. 연구개발 예산은 10% 늘렸다.
△서 상무관=일본은 설비 투자에 대한 보조금이나 세액공제 이외에 생산에 대해서도 보조금을 주겠다는 제도를 새로 만들어 이제 곧 시행된다. 예를 들어 웨이퍼 한 장당 일정액의 보조금을 주면 당연히 원가 경쟁력도 생긴다. 기업 이윤에도 영향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한번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다
-사회=우리나라는 지역별 맞춤 통상전략 있을지
△서 상무관=한일 양자가 디지털과 같은 신통상 규범을 만들어나갔으면 한다. 환경 인권 같은 것은 EU나 미국은 너무 앞서나가 있어서 우리나라나 일본이 쫓아가기 어려운 분야들이 있다. 한일이 하나의 그룹이 돼 같이한다면 이끌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상무관=한중 간에 우호 정서 증진, 고위급 교류 확대 이런 부분들이 일단은 시급한 과제다. 접촉면을 늘리면서 상호 이해의 공간을 찾는 노력들이 있어야 할 듯하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얘기하는 것들은 부담이 되는 측면들이 많기 때문에 지방정부와 협력들을 좀 더 확대했으면 좋겠다.
△최 상무관=EU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그래서 역내 공급망이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을 하고 있다. EU와 협조를 하지 않으면 바잉 파워(구매력)에서 밀릴 수가 있다. 당장 EU에 큰 투자를 하지 않더라도 EU와 손을 잡고 있어야 미국과 협상시 레버리지로 활용할 수 있다.
△김 상무관=우리 기업의 대미 투자 여건은 매우 좋은 편이다. 이런 모멘텀을 계속 살려나가야 될 것 같다. 핵심 첨단 산업에서 우리와 미국은 공급망 연결이 심화되지 않겠나. 앞으로 닥쳐올 수 있는 공급망 리스크에 대해 한미가 협력해야 할 부분들을 찾아야 한다. 아울러 한미 FTA는 양국 경제협력관계의 백본(중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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