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차 분야에서 현대자동차그룹의 목표는 2030년까지 ‘글로벌 톱3’ 전기차 회사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글로벌 판매량을 360만 대로 늘리고 전기차종을 31개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수요 부진으로 전기차의 성장세가 주춤하자 이러한 전략에 수정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다른 경쟁 업체의 경우 전동화 전환 속도를 늦추는 대신 높은 인기를 끄는 하이브리드 모델을 투입하며 대응에 나섰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전기차 성장 둔화를 일시적으로 보고 기존 전략을 고수한다는 방침이다. 전기차 수요가 회복되는 시기까지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하이브리드차를 확대하는 식의 유연성을 발휘해 시장 수요를 충족하겠다는 계획이다.
‘후륜’ 제네시스 하이브리드 내년 초 출시?…"물리적으로 불가능"
자동차 업계를 뜨겁게 달군 주제는 제네시스의 하이브리드 모델 출시 여부다. 제네시스의 하이브리드 출시설은 지난해 11월부터 업계와 자동차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돼 왔다.
현대차그룹은 차세대 하이브리드 모델에 탑재할 2.5ℓ 터보 엔진을 개발하고 있다. 현재 현대차·기아의 대다수 하이브리드차에는 1.6ℓ 엔진을 사용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2025년 양산을 목표로 2.5ℓ 터보 엔진을 개발 중이라는 사실은 기아(화성 엔진 공장) 노조 내부 문서를 통해 처음 확인됐다. 제네시스 하이브리드 출시설의 시작점이다. 여기에 최근 제네시스 북미 지역 딜러들이 제네시스의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모델 출시를 요구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진 것도 하이브리드 출시설에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현대차그룹은 2.5ℓ 터보 엔진의 개발 사실만 인정할 뿐 어느 브랜드, 어떤 차종에 적용할지는 결정된 게 없다는 입장이다. 더욱이 제네시스는 후륜 구동이어서 전륜 기반의 터보 엔진을 개발하는 데 추가적인 시간이 소요된다. 업계 관계자는 “내년 초에 제네시스가 출시되려면 올해 양산 여부부터 결정해야 한다”며 “개발 스케줄과 시장 테스트 등을 고려해도 내년 출시는 어렵다”고 말했다.
2.5ℓ 터보 엔진…팰리세이드 하이브리드부터 탑재
현대차그룹이 개발 중인 2.5ℓ 터보 엔진은 제네시스가 아닌 현대차의 준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팰리세이드 하이브리드 모델에 먼저 탑재될 가능성이 높다. 출시 시점이 이르면 연말 혹은 내년으로 유동적일 뿐 현대차그룹도 출시 자체는 부인하지 않는다. 팰리세이드는 넓은 실내 공간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낮은 연비가 아쉬움으로 꼽힌다. 새 터보 엔진이 탑재되면 연비는 ℓ당 14.3㎞까지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1.6ℓ 엔진 기반의 카니발 하이브리드보다 출력과 연비 모두 앞선다. 친환경차 연비(14.3㎞) 기준도 만족해 취득·등록세 면제 등 세제 혜택도 가능하다.
상용차 첫 하이브리드…미국에서 싼타페 HEV 출시
현대차그룹은 하이브리드차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하이브리드차 시장의 성장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판단이 깔렸다. 현대차는 올해 글로벌 하이브리드차 시장이 전년 대비 28% 성장할 것으로 보고 48만 대의 연간 판매 목표를 세웠다. 전체 매출에서 하이브리드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9%에서 올해 11%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후에도 하이브리드차 판매 확대와 수익성 제고가 지속되면서 2030년까지 매출 기여도 15%를 달성할 것으로 봤다.
현대차는 올해 상반기 출시하는 다목적차량(MPV)인 스타리아 2세대 모델에 하이브리드 엔진을 탑재한다. 기존에 아반떼와 쏘나타, 그랜저, 투싼 등 승용차에 더해 상용차에서도 처음으로 하이브리드 모델을 출시하는 것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완성차 시장인 미국에서는 올해 3월 안에 신형 싼타페 하이브리드(HEV) 모델을 선보인다. 다만 이번 신형 싼타페부터는 시장 수요를 고려해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모델을 포함하지 않기로 했다. 현대차는 늘어나는 현지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미국 앨라배마 공장(HMMA)에서 하이브리드차를 생산·판매하고 있다. 기아도 K5·8, 스포티지, 쏘렌토, 카니발 등 주요 차종에 이어 내년 소형 SUV인 셀토스에 대한 하이브리드화를 진행한다.
하이브리드는 ‘징검다리’…전기차 전환 계획엔 “변함없다”
현대차그룹은 전동화 전환 과정에서 하이브리드차가 ‘징검다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단기적으로 충전 인프라 부족과 안전·가격 문제로 전기차 수요가 주춤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당장 모든 차종을 전기차로 전환하기 보다는 높은 인기를 얻는 하이브리드차를 투입해 유연성을 발휘하는 것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해 11월 울산 전기차 전용공장 기공식에서 “큰 틀에서 어차피 전기차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운영의 묘를 살려서 해보겠다"고 발언한 것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판매·투자를 단계적으로 확대하며 전기차 분야 글로벌 ‘톱3’ 위상을 굳히겠다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2030년까지 글로벌 시장에서 360만 대의 전기차를 판매하고 전기차 차종을 총 31대로 확대한다. 지난해부터 이어지는 전기차 시장 둔화세에도 해당 목표를 수정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현대차는 2026년 94만 대에서 2030년 200만 대로, 기아는 100만 5000대에서 160만 대로 전기차 판매량을 늘린다.
이는 전기차 분야에 소극적인 다른 경쟁 업체들과 상반된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는 지난해 말 2024년 전기차 40만 대 생산계획을 철회했고 올해 생산 목표를 20만~30만 대로 내렸다. 대신 북미 지역에서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모델을 재출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포드도 전기 픽업트럭의 생산을 줄이는 대신 내연기관차의 생산을 늘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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