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에서 선물이 현물 시장을 좌우할 때 ‘왝더독(Wag the dog)’이라고 한다.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는 말이다. 현물 거래에서 파생된 선물이 오히려 몸통인 현물 시장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일상 생활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적지 않다. 예를들어 점심 시간에 밥값보다 커피값이 더 나오는 경우를 꼽을 수 있다. 다른 말로는 ‘주객전도’ 라고도 한다.
연금과 관련한 대표적인 주객전도 현상으로는 세제 혜택이 있다. 우리가 연금에 가입하는 주된 목적은 무엇일까. 세제 혜택을 받기 위해서인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연금의 목적은 은퇴 후 생활비 마련이다. 월급과 같은 정기적인 소득이 끊기는 은퇴 시기를 대비해 미리 현금 흐름을 준비하는 것이다.
물론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에 대한 세제 혜택은 적지 않다. 연 5500만 원 이하를 버는 근로 소득자는 900만 원 한도 내에서 16.5%, 이를 초과해 버는 이는 13.2%의 세액공제 혜택을 받는다. 납입하고 난 다음부터 16~13%의 수익률을 확보하고 시작하는 셈이다. 게다가 운용 기간 동안에는 세금을 떼지 않기 때문에 원금이 늘어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55세 이후 연금 수령 시 낮은 연금소득세율(3.3~5.5%)을 적용받을 수도 있다. 현재 판매되는 그 어떤 금융 상품보다 막강한 세제 혜택이 있다 보니 관심이 몰릴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연금을 시작할 때 세제 혜택만 보고 시작한다는 점이다. 일부 금융회사들도 세제 혜택을 앞세워 연금 상품을 알린다. 여러 가지 이유로 연금을 중도에 해지하거나 일시금으로 인출하면 세제 혜택은 받지도 못하게 된다. 심지어는 그동안 받은 세제 혜택 보다 더 많은 세금을 토해내게 된다.
세제 혜택을 고스란히 누리려면 전제 조건이 엄격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법에서 정한 특별한 사유 이외에는 중도에 해지할 수 없고 55세까지 유지해야 한다. 특별한 사유란 가입자의 사망, 해외 이주, 개인회생이나 파산, 가입자와 부양가족의 3개월 이상 요양 의료비 등이다. 연금을 찾을 때에도 최소 10년 이상 나눠 받아야 한다. 이러한 요건은 향후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알뜰살뜰 연금을 모았다가 여러 사정으로 그동안의 세제 혜택을 쉽게 포기하는 실정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퇴직연금 수급계좌의 92.9%가 일시금을 선택했다. 이런 상황의 근본 원인은 생애 주기에 따른 장기적인 재무 설계 과정의 결여다. 내 집 마련, 자녀 교육비, 은퇴 준비 등 생애 중요한 이벤트를 위한 장기적인 재무 계획이 선행될 때 성공적인 연금 마련도 가능하다.
/정다은 기자 downr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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