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선사인 HMM(011200) 인수전이 달아 오르면서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새 주인을 찾던 중형급 해운사들의 매각이 미뤄지고 있다. 국내에서 중형급 해운사를 인수할 전략적투자자(SI)가 마땅치 않던 상황에서 HMM 새 주인이 나머지 해운사를 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 사모펀드(PEF)가 보유한 중형급 해운사 상당수가 HMM의 전신인 현대상선에서 떨어져 나온 역사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과거 정부 주도의 해운업 구조조정으로 한진해운이 파산한 뒤 유일한 대형 국적 선사로 남은 HMM의 인수 부담만 커진 셈이다.
18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HMM을 비롯해 현대LNG해운·SK해운 탱커선사업부·에이치라인해운·폴라리스쉬핑 등 다수의 중·대형급 해운사 경영권이 M&A 시장에 잠재 매물로 나와 있다. 이들 중형 선사들은 2010년대 급속도로 악화된 해운 업황 탓에 차례로 사모펀드에 경영권을 넘겼다. 해운 구조조정이 일던 2014~2017년 사이의 일이다.
사모펀드들은 운용 기간 등을 고려해 2020년부터 매각에 나섰지만 마땅한 인수자가 없어 M&A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다. 중형급 해운사만으로는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찾기 어려운데다 국가 경제 미칠 영향까지 고려되면서 해외로 매각도 쉽지 않은 분위기다.
IB업계 전문가들은 HMM 인수전이 본격화하며 중형급 해운사 매각은 더욱 소강 상태에 빠져 들었다고 진단한다. 실제 현대LNG해운을 소유한 IMM컨소시엄을 비롯해 SK해운과 에이치라인해운의 최대주주인 한앤컴퍼니 등 사모펀드 운용사들은 HMM 인수전의 베일이 벗겨지는 것을 기다리는 것으로 파악된다. IMM프라이빗에쿼티와 IMM인베스트먼트는 2014년 약 5000억 원에 현대LNG해운 경영권을 인수했으며 한앤컴퍼니는 2014년과 2017년 각각 4200억 원, 1조5000억 원을 투입해 에이치라인해운과 SK해운을 품에 안았다. 이들은 모두 해운사 매각을 시도해왔다.
IB 업계 관계자는 "옛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사업부였던 현대LNG해운이나 에이치라인해운 등은 특히 HMM을 유력한 새 주인으로 보고 있다"면서 “한진해운이 2017년 파산하고 대형 선사가 HMM 한 곳만 남으면서 중형 선사를 인수할 유일한 후보가 됐다”고 진단했다.
HMM 매각주관사 삼성증권(016360)은 오는 21일 예비입찰을 마감하고 후보 기업들과 초기 협상을 거친 뒤 이르면 이달 말 적격인수후보를 발표할지 검토하고 있다. 현재 하림(136480)·동원·LX·SM·글로벌세아 등 국내 중견 그룹사들과 글로벌 5위 선사인 독일의 하팍로이드까지 투자를 검토하며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다만 현대차나 포스코 등 주요 대기업이 등판하지 않자 연내에 최종 인수자를 가려내기는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새 인수 후보군으로 하팍로이드가 등장하면서 정부가 해외기업들의 국내 인수전 참전을 허용할 것인지 여부도 변수다. 법적으로는 해외 기업의 국내 선사 인수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 산은 등의 시각이다. 다만 산은이 매각 흥행에만 매몰되어 수출 산업에 영향이 큰 국적 선사의 해외 매각을 용인한다는 비판도 많아 실제 외국계의 국내 선사 인수가 성사될지는 미지수다. 한 사모펀드 운용사 관계자는 “하팍로이드의 HMM 인수 참전을 계기로 국내 선사의 해외 매각 길이 열릴 가능성도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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