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가 전국 섬 지역 전력 공급 업무를 맡긴 하청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습니다. 한전이 이번 판결에 불복, 항소할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광주지법 민사11부(재판장 유상호)는 지난 9일 도서 지역 전력설비 하청업체 노동자 145명이 한전을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재판부는 원고 45명을 한전 소속 노동자로 판단했고 나머지 100명에 대해 한전이 고용의사 표시를 해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이들은 한전과 ‘도서전력설비 위탁운영 용역계약’을 체결한 JBC(옛 전우실업) 직원들로서 울릉도 등 66개 도서지역에서 한전 소유의 발전소 운영 및 배전시설 유지·관리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육지의 발전소로부터 송전, 배전을 받기 어려운 섬 지역은 지방자치단체나 주민이 자가발전시설을 운영해 전력을 생산해오다가 한전이 이를 인수한 뒤 JBC에 수의계약으로 운영을 맡겨왔습니다. 1996년부터 30년 가까이 이어진 수의계약은 JBC가 한전 퇴직자들로 구성된 한전전우회가 설립한 곳이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원고 측은 ‘도급계약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근로자파견계약에 해당한다’며 파견법에 따라 2년 넘게 일한 JBC 직원들은 한전이 직고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소장을 2020년 3월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한전 측은 “도급인으로서 지시 이외에 사용자의 지위에서 지휘·명령을 한 적 없다”며 맞섰습니다.
재판부는 원고들 손을 들어줬습니다. 한전 직원이 JBC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구체적인 업무 지시를 하거나 한전 지사장이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을 통해 JBC 직원들로부터 일일 보고를 받는 등의 정황이 ‘스모킹건’으로 꼽힙니다.
법원은 “한전이 하청노동자에게 업무처리지침과 함께 교육, 훈련을 제공했고 공문, 전화 등으로 구체적인 업무를 지시했다”며 “각 노동자도 일일 보고서를 작성해 한전에 보고하는 등 한전 사규를 준수할 의무가 있었고 취업 규칙에 따라 한전 창립기념일에 유급 휴일을 받기도 했다”고 설명했습다.
재판부는 “하청업체가 인력 채용이나 인사권, 교육·훈련 등에 대한 권한이 없어 독립적 기업 조직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파견법 개정 전에 입사한 45명은 한전의 근로자의 지위에 있고 법 개정 이후 입사한 나머지(100명)는 한전이 고용의사 표시를 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한전 측은 “판결문을 검토한 뒤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을 아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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