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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 하라 도쿄공대 교수 “韓 대학·연구소 日보다 국제적이나 성과 부족…세상에 없는 연구 미흡”

◆하라 마사히코 도쿄공대 교수

日, 소·부·장 경쟁력 여전하지만 해외 유학 급감해 문제 ?

응용 분야 산학협력에도 기업의 기초연구 지원금 감소

대학, 국제 흐름 뒤처지고 창업 문화 부족, 자율성 보장

韓, 신개념 연구 부족과 행정 업무 과다로 노벨상 없어 ?

하라 마사히코 도쿄공대 교수가 13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대학과 연구소가 일본보다 더 국제적이지만 신개념 연구 부족 등으로 놀라운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제공= 하라 교수






“한국 대학과 연구소는 일본보다 더 국제화됐으나 새로운 연구가 많지 않은 데다 세계적으로 놀라운 성과도 부족합니다.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아직 나오지 않는 것도 이와 관련 있지 않을까요.”

하라 마사히코 도쿄공대 재료·화공학부 공업화학과 교수는 13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연구계가 장비와 인재를 많이 확보하고 있지만 새로운 연구에 도전하는 문화가 부족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한양대가 2008~2013년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와 함께 ‘RIKEN-한양대 공동연구센터’를 운영할 때 공동센터장을 역임하는 등 한중일 과학기술 교류 협력에 앞장서왔다.

하라 교수는 “일본이 여전히 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으나 학생들이 30~40년 전부터 해외 유학을 가지 않아 문제”라며 “배터리 등 응용 분야에서는 산학 협력이 잘 이뤄지는 편이지만 대학의 기초연구에 대한 기업의 지원이 감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도쿄공대 등은 교육·연구 측면에서 자율성이 크고 STEAM(과학·기술·공학·예술·수학) 등 과학기술과 인문학·예술의 융합을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우선 교수님의 연구 성과를 소개한다면.

△재료과학에서 나노 기술과 자기 조립 공정 연구와 교육에 참여해 발전시켰다. 요동, 소음, 생명의 기원, 화학적 진화라는 개념을 적용해 학제 간 연구·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약 380편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새로운 연구 개념을 많이 끌어냈다. 현재 과학기술과 예술·디자인의 융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도쿄공대 등 일본 주요 공대의 연구개발(R&D)은 어떤 수준인가. 한국처럼 논문 위주의 풍토인가 아니면 기술 이전이나 창업도 많이 하는 편인가.

△일본 이공계 대학의 R&D 수준은 기초에서 응용까지 여전히 높다. 산학 협력은 배터리 등 응용 분야에서 잘 진행되고 있다. 요즘 일본 기업들은 대학에 그렇게 많은 연구비를 주지 않는다. 자체 기초 연구개발 역량을 키우면서 대학 의존도를 낮추고 있다. 세계적 평가 기준으로 보면 일본 이공계 대학은 글로벌 흐름에 뒤처져 있다. 벤처기업을 장려하고 있으나 아직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학교 창업이 어려운 실정이다. 다만 일본 대학도 교원 임용 과정에서 논문을 중시하지만 상위 저널 투고, h지수(연구 생산성·영향력 지표), 인용지수 등을 한국만큼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는다. 논문은 평가의 일부일 뿐이다. 최첨단 연구가 항상 상위 저널에 게재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 대학은 교육 혁신과 인재 양성을 어떻게 추진하고 있는가.

△21세기 들어 학제 간 교육을 적극 추진해왔다. 도쿄공대는 재료과학과 정보·컴퓨터과학의 융합을 추진 중이다. 과학기술과 인문학, 예술·디자인 전공 학생 간 공동 프로젝트도 장려한다. 창의력과 상상력 중시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정말 중요하다. STEAM을 넘어 과학기술과 인문학의 융합을 강조한다. 첨단 연구개발을 수행하는 기업 연구소에 학생들을 보내는 것도 특징이다.

-RIKEN에서 20년 이상 연구하다가 2003년부터 도쿄공대 교수를 겸직했는데 양측의 연구 환경을 비교한다면.

△RIKEN에서는 ‘정말 새로운 과학이란 무엇인가’를 의식하며 연구했다. 물론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다고 연구 과제를 쉽게 수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늘상 새로운 연구를 독립적으로 할 수 있는지 고민했다. RIKEN은 대학과의 연계 프로그램을 추진한다. 연구자는 좋은 경험을 하게 되고 학생들은 첨단 연구 환경을 접할 수 있다. 도쿄공대로 옮겨서는 새로운 연구를 하면서 학생들을 어떻게 하면 10년·20년 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다. 연구 환경 측면에서 보면 일본은 독립과 자치가 보장된다. 기대만큼 크지 않을지 몰라도 자유로운 편이다. 정부도 목표를 가지고 경쟁 속에 지원을 늘려왔다. 대학 등록금은 한국과 달리 대학의 재량과 결정에 맡기는데 최대 20%까지도 올릴 수 있다.



-일본은 산업 경쟁력이 떨어졌지만 여전히 소재·부품·장비가 우수하다. 앞으로 일본의 산업 경쟁력이 어떻게 될 것으로 전망하는가.

△일본의 시장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경쟁국들의 뛰어난 성장 때문이지 실제로 일본이 뒤지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일본 기업의 소재·부품·장비 개발 등 기초연구는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고품질의 원자재에서는 여전히 일본이 주도하고 있다. 반도체 회로용 폴리머, 적층 재료 등의 원료, 휴대폰 부품 재료, 의료와 환경 재료, 센서 등에서 품질 수준이 높다. 하지만 상품으로 만드는 분야에서는 일본이 좀 뒤지는 면이 있다.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가 20명을 넘는다. 그 배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일본에서는 과학적 진리 추구를 사회적 지위 획득보다 우선시한다. 서양과는 조금 다른 기질로 과학기술을 발전시켰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부분에 눈을 돌려 세밀하게 살펴보고 심도 있게 논의하면서 진실을 탐구한다. 수묵화에는 색이 없지만 옅고 희미한 풍경에서 깊은 의미를 읽을 수 있지 않는가. 인공지능(AI)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인간만 아는 ‘미 의식’을 유지하면서 데이터를 생성하면 또 다른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것이다. 막연한 암시 속에서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을 하는 게 일본 특유의 노벨상 수상 원천이라고 본다.

-일본이 1990년대 초반부터 ‘잃어버린 30년’ 국면으로 들어가며 과학기술의 저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데.

△면역 체계가 스스로 기능을 발달시키는 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잃어버린 30년’이 헛되지 않았다고 본다. 다음 단계로의 도약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 아시아에서 21세기의 새로운 과학기술이 도래하리라 믿는다.

-한중일 과학기술 교류 협력 프로그램인 ‘캠퍼스아시아’의 일본 책임자로 활동했는데 어떤 성과를 냈는가. 요즘은 미중 간의 기술 패권 전쟁으로 협력이 원활하지 않을 것 같은데.

△2011년부터 캠퍼스아시아 프로젝트에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지금까지 3개국 77개 대학에서 1만 명 가까운 학생들이 참여해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며 3개국과 아세안의 협력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중 헤게모니 전쟁은 큰 문제가 아니다.

-30~40년 전부터 일본 학생들의 해외 유학이 크게 줄어들었는데 과학기술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지는 않는가.

△일본인들은 이미 국제적이어서 굳이 해외 유학을 하지 않고도 수준 높은 공부를 할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다. 일본이 국제 수준에 뒤처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유학을 통해 다양성을 공부할 수 있다는 점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학생들이 순종적이어서 부모의 의견을 잘 따르는 경향이 있다. 일부 부모는 자녀의 유학을 독려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유학 경험을 가진 대학생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기준으로 전체의 3~4%에 불과하다. 심각하다.



-일본에서는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산학연정(産學硏政)이 어떻게 협력하고 있는가.

△일본에서는 ‘산관학’이라는 용어를 쓰는데 산학 협력이 잘 이뤄지고 있는 편이다. 문부과학성이 2007년부터 대학과 연구기관에 글로벌 연구센터를 구축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월드프리미어국제연구센터이니셔티브(WPI) 사업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WPI는 2011년 출범한 한국의 기초과학연구원(IBS)과 비슷하다. WPI 센터들은 고도의 자율성을 부여받아 일본의 전통적인 연구 운영과 행정 방식에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 소니와 파나소닉이 2015년 OLED 디스플레이 부문을 통합해 JOLED를 만든 것처럼 요즘은 여러 회사들이 하나의 회사를 설립하고 정부가 이를 지원하고 있다.

-20여 년 동안 한양대 화학과 객원교수를 지냈다. 일본과 비교하면 한국의 R&D 생태계는 어떤 수준이라고 생각하는가.

△한국에는 서양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 대학과 연구소의 분위기가 일본보다 훨씬 국제적이다. 많은 교수들이 수준 높은 연구를 한다. 하지만 완전히 새롭고 들어본 적이 없는 개념에 대한 연구는 상당히 미진하다. 좋은 연구 장비를 최대한 활용해 세계적 수준의 연구 결과를 내더라도 이미 세계 어디에선가 비슷한 연구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 자체도 훌륭한 연구이지만 그 이상의 놀라움은 크지 않다. 그래서 세상 어디에서도 하고 있지 않고 들어본 적도 없는 연구를 하기를 기대한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 연구자들은 경쟁 사회에서 매우 바쁘고 행정·관료적 업무가 너무 많아 완전히 새로운 것을 논의할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왜 한국에는 아직까지 노벨상 수상자가 없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한국의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조언한다면.

△일본은 뛰기 전에 너무 많이 생각해서 출발이 늦어지는 반면 한국은 뛰면서 생각하다가 당황스러운 일을 당하기도 한다. 이것을 융합하면 더 나은 과학기술 발전을 이룰 수 있다. 성공의 기준을 연구비를 많이 따내고 자신의 지위를 올리는 것에서 찾을 게 아니라 자연의 진리와 과학의 아름다움을 통달하는 것에 둬야 한다.

◆He is…

195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1988년 일본 도쿄대 공대 유기·고분자재료학과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국 맨체스터대 물리학과 방문연구원을 지낸 뒤 1985년 이화학연구소(RIKEN)에서 연구실장 등으로 근무하며 프런티어 연구 시스템 구축에 기여했다. 2003년부터 도쿄공대 교수를 겸직하며 아시아 R&D 교류 협력에 기여했다. 학교 내 지구·생명과학연구소 겸직 교수로도 활동했다. 한양대에 설립됐다가 10년 전 종료된 ‘RIKEN-한양대연구센터’의 공동센터장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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