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反)시장적인 규제로 국가 에너지 공급 체계가 뒤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전력도매가격(SMP)상한제와 국회에서 논의 중인 이른바 횡재세법이 대표적이다. 에너지 가격에 개입하거나 기업 이익을 환수하는 규제가 시행될 경우 민간 에너지 분야의 투자 여력이 사라져 장기적으로는 공급 체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업계 및 정부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SMP상한제 도입을 올 5월부터 추진하고 있다. 이 제도는 국무조정실의 규제 개혁 심의를 남겨둔 상태다.
SMP상한제란 발전 사업자가 생산한 전기를 한국전력에 판매하는 도매가격에 상한을 두는 제도다. 전기 생산에 필요한 국제 연료 가격 급등으로 SMP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준까지 상승할 경우 한시적으로 평시 수준의 정산 가격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러시아가 천연가스 공급을 크게 줄이면서 국제 에너지 시장에서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이 폭등했고 국내 SMP도 덩달아 오르는 추세다.
업계에서는 이 제도 시행에 대한 여러 문제를 꼬집었다. 우선 올 상반기 14조 원에 달하는 한전의 영업손실을 민간에 떠넘긴다는 지적이다. 산업부가 밝힌 SMP상한제 개정안에 따르면 직전 3개월 동안의 SMP 평균이 과거 10년 동안의 월별 SMP 평균값의 상위 10%에 해당할 경우 1개월 동안 평시 수준의 정산가를 적용한다. 상한 가격은 평시 수준인 10년 가중평균 SMP의 1.25배 수준으로 정한다. 이렇게 되면 올 7월 SMP상한제가 도입됐다고 가정할 때 발전사들이 받는 정산 금액은 기존 시장가격에 비해 1㎾h(킬로와트시)당 17원 급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평균 SMP가 150원 수준임을 고려하면 기존 대비 10% 이상 적게 정산을 받는 셈이다.
전력 산업에 대한 인위적인 가격 규제는 민간 에너지 산업의 투자 동력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내 발전 업계는 LNG를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직접 도입해 국내 전력 도매가격 하락과 국가 에너지 안보에도 일정 부분 기여하고 있다”면서 “SMP상한제가 시행되면 발전사들이 천연가스를 직수입할 유인이 사라져 중장기적으로는 전력 도매가격이 오히려 상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내 LNG 시장에서 한국가스공사가 오랫동안 수입·공급을 독점해왔지만 최근 들어 민간이 차지하는 수입 비중은 20% 수준으로 높아졌다. 업계에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로 글로벌 LNG 물동 대란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SMP상한제로 민간 에너지 기업들의 LNG 도입이 주춤할 경우 당장 올해 동절기 국가 천연가스 수급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국회에서 도입이 거론되는 횡재세법도 정유 업계의 설비 투자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법은 정유사 등의 초과 이익에 세금을 물려 환수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후보가 최근 토론회에서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사람들이 고통받을 때 특별한 혜택을 받은 기업들이 있다”며 횡재세 긴급 도입을 주장했다.
횡재세가 도입될 경우 정유사의 설비 투자 여력이 감소해 국내 석유제품 공급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정유 업계 관계자는 “신규 투자 감소로 국내 정제 능력이 축소되면 해외로 가솔린이나 디젤을 수출하기는커녕 내수 공급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면서 “장기적인 에너지 안보 관점에서 제도에 대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정유 업계에서는 올해 고유가에 따른 이례적인 수익에만 세금을 물리는 것은 차별적이라는 입장이다. 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 4사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이 약 12조 원을 기록했지만 2020년의 경우 5조 원이 넘는 영업적자를 냈다. 적자에 대한 정부 지원책이 부재한데 이익만 환수하겠다는 것은 맞지 않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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