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손 꼽히는 감염병 전문가인 백경란 서울삼성병원 교수가 새 정부의 과학 방역 사령탑으로 취임했다. 감염병 관련 전문가로서는 손색이 없다는 평이지만 즉각적으로 방역 정책을 이끌어야 한다는 점에서 행정 경력 부재가 약점으로 꼽힌다. 또한 윤석열 정부에서 문재인 전 정부를 이른바 ‘정치 방역’이라고 비판한 만큼 백 청장이 얼마나 정치적 외압을 극복할 수 있을 지가 관건이라는 지적이다.
백 청장은 18일 취임사에서 “질병청의 감염병 재난위기대응 컨트롤타워 역할을 재정립할 것”이라며 “그간 축적된 빅데이터를 활용해 과학적 근거를 생산하고 이에 기반한 방역 정책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문 전 정부가 지적 받아온 정치 방역과 달리 질병청이 주도하는 동시에 과학적 근거 중심의 방역 정책을 실행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다만 전임 정부의 거버넌스 체계와 새 정부의 ‘코로나19비상대응로드맵’이 크게 차별점이 없다는 것이 중론이어서 정치 방역 비판을 피하기 위해선 백 청장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정기석 한림대 성신병원 교수는 이에 대해 “백 청장이 총리실과 대통령실의 정무적 판단에 맞서 얼마나 소신을 갖는 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취임사에서 수 차례 강조한 근거 중심의 과학 방역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 된다. 문 전 정부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는 실외마스크 해제를 두고 이른바 신구 권력 갈등을 표출했다. 전 정부는 실외마스크 착용이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다고 했고 인수위에서는 실외마스크 해제가 시기상조라고 맞섰다. 이에 대해 의료계에서는 “양측 모두 과학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실외 마스크 해제에 대해 확진자·사망자 등에 대한 명확한 기준 제시 없이 언제쯤 하겠다고 공지하는 것은 전혀 과학적이지 않다”고 했다.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과 달리 행정 경험이 없다는 점도 즉각적으로 방역 상황을 총괄해 안정적으로 엔데믹을 이끌어야 하는 백 청장에겐 약점이다. 정은경 전 질병청장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보건복지부·질병청에서 20년 이상 공직 생활을 하면서 보건·행정의 전문성을 쌓았다. 반면 백 청장은 1994년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전문의로 부임한 뒤 30년 가까이 의료 현장에서만 경력을 쌓았다. 인수위에도 참여하며 방역 정책을 기획했지만 행정 경험이 없다는 것이 취약점이란 평이다. 인수위에 참여한 A위원은 “백 청장이 실력은 좋지만 행정 경험이 없는 점이 유일한 흠”이라고 말했다.
누가봐도 납득할만한 방역 정책을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 향후 과제로 꼽힌다. 천 교수는 “질병청이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고 어떤 정책을 실행하는 지 쉽게 납득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제언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