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주도 벤처 생태계로 대전환을 이뤄야 산업 선진화와 국가 경제의 역동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지금의 벤처 붐이 지속되려면 민간 중심의 모태펀드를 키워야 하고 투자금에 대해서는 세제 혜택이 필요합니다.”
지성배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회장이 17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위드 코로나 시대와 벤처 4.0’을 주제로 한 서경 인베스트 포럼의 기조연설에서 “지속 가능하고 자생력 있는 민간 중심의 벤처 투자 생태계의 확립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민간 모태펀드 활성화가 벤처 생태계 대전환의 해답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 회장은 “벤처 투자 시장이 대형화·다각화하고 있지만 매년 증가하는 정부 주도의 모험자본과 비교해 민간 자금 공급은 여전히 부족하다”며 “공공자금만으로는 유망 기업들에 대한 성장 자금 지원에 한계가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최근 대기업 등이 민간 모태펀드(모펀드) 조성에 나서고 있지만 벤처 투자 시장에서 존재감은 크지 않은 편이다. 대표적인 국내 민간 모펀드로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의 한국IT펀드가 꼽히지만 공공 모태펀드나 산업은행 등 정책 금융기관이 주축 출자자로 참여하는 펀드에 일부 자금을 보태는 수준이다.
실제 최근 수년간 결성된 벤처펀드 중 약 절반은 모태펀드 자금을 바탕으로 조성됐다. 지난해 모태펀드의 자펀드 결성액은 총 3조 2,320억 원으로 전체 펀드 결성액(6조 5,676억 원) 중 49.2%를 차지했다. 정책 금융기관이 주축 출자자로 참여한 펀드까지 고려하면 국내 벤처펀드의 대부분이 공공자금을 바탕으로 조성된 펀드로 볼 수 있다.
민간 모태펀드 활성화는 지 회장이 24년 동안 벤처 업계에서 활동하며 확고해진 지론이지만 여전히 미흡한 셈이다. 그는 “벤처 투자 산업이 정부의 예산 지원과 정책 금융 자금을 통해 성장해왔다면 이제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 민간 영역이 벤처 투자 시장의 중심에 서야 한다”고 단언했다.
지 회장은 공공 중심의 모태펀드와 민간 모태펀드의 전략적 역할 분담도 주문했다. 공공 모태펀드는 소셜 벤처와 청년 창업 기업 등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큰 분야에 집중 투자하고 민간 모태 펀드는 성장성이 높은 벤처 기업을 더욱 발전하도록 하는 데 대규모 자금을 공급하자는 것이다.
지 회장은 기업이나 금융회사 등 민간 출자자들의 벤처 투자 확대를 견인하려면 정부 측의 세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그는 “민간 출자자들의 투자에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민간 모태펀드 활성화 방법”이라며 “세제 혜택으로 줄어드는 세수에 비하면 스타트업 투자 활성화와 고용 창출 등으로 생기는 법인세와 소득세 증가분이 훨씬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 회장은 또 벤처 투자 업계의 중간회수 시장 확대에 대한 필요성도 강조했다. 중간회수란 벤처기업의 상장과 인수·합병(M&A) 등 최종 단계 이전에 투자금을 회수하는 것을 말한다. 벤처기업 구주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세컨더리펀드’와 출자자(LP) 지분을 사고파는 ‘LP 지분 세컨더리펀드’의 활성화가 중간회수 시장 확대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 회장은 “매년 펀드 결성과 신규 투자 규모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지만 투자 실적에 비해 회수 실적은 10년 전과 큰 변화가 없다”며 “중간회수 시장을 활성화해 벤처 투자 생태계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 지 회장은 벤처 업계에 우수한 인력들이 모여들고 있어 향후 산업 전망에 대해서는 자신감을 피력했다. 그는 “지금 벤처 업계를 보면 창업자나 투자자들 모두 국내 최고 수준의 인재들”이라며 “실력 있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산업은 발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벤처 붐 속에 일부 스타트업의 기업가치에 거품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그는 “전 세계적인 측면에서 (기업가치가) 표준을 찾아가고 있다”며 “벤처 업계에 자금이 몰리는 것만 보면서 ‘거품’이라고 폄하하는 것은 무리가 있고 중소·벤처기업의 잠재력은 매우 크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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