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정급여형 퇴직연금제도(DB)를 도입한 상시 근로자 300인 이상 기업은 앞으로 적립금 운용 목적 및 방법, 목표 수익률, 운용 성과 평가 등을 포함한 적립금운용계획서 작성이 의무화된다. 이를 심의하기 위한 적립금운용위원회도 구성해야 한다. 이런 내용을 담은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를 통과했다. 조만간 공포되면 1년 후 시행될 예정이다.
운용계획서와 운용위 의무화는 합리적인 적립금 운용 프로세스 정립이라는 의미가 크다. 과거 퇴직연금 DB 자금은 안정성을 위해 대부분 예금이나 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ELB)와 같은 원리금보장형상품으로 운용돼 별다른 의사 결정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이제 운용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복잡한 의사 결정이 불가피해졌다. 운용계획서와 운용위는 이를 합리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제도다.
운용계획서는 해당 기업의 퇴직연금 DB 적립금을 어떤 목표로, 어떤 상품을 통해, 어떻게 운용할지 포괄적으로 기재한 가이드북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향후 10년간 평균 임금 상승률만큼의 운용 수익률을 달성하는 것이 우리 회사 퇴직연금 DB 자금의 운용 목표이며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예금에 30% 이상, 국내외 주식형 펀드에 30% 이하, 국내외 채권형 펀드에 50% 이하로 가입할 수 있다’고 사전에 정해놓는 것이다.
운용계획서는 운용위를 통해 정하게 돼 있다. 과거에는 퇴직연금 담당자 홀로 운용 상품을 선택했다. 그렇기에 여러 예금 상품 중 단순히 금리가 가장 높은 예금을 선택해 가입하는 경우도 있었다. 운용위가 도입되면 금융 전문가를 비롯해 퇴직연금과 관련된 여러 구성원 간의 합의로 운용 계획이 확정된다. 국내외 유수 기금과 퇴직연금기금들은 오래전부터 이 제도를 도입, 운영해왔다.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면 우선은 두려움이 앞서기 마련이다. 아마 기업 퇴직연금 담당자들은 벌써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운용위와 운용계획서는 위에서 언급한 대로 그리 어려운 개념이 아니다. 아직 1년의 기간이 남아 있으니 퇴직연금 사업자와 함께 차근차근 준비하면 무리 없이 도입할 수 있다. 더구나 이 두 제도는 기업 퇴직연금 담당자들이 적립금을 운용할 때 발생 가능한 선택의 부담을 줄여줄 수 있다. 이왕 의무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면 기한에 몰려 진행하지 말고 지금부터 검토하고 준비하는 것도 좋아 보인다.
/오원석 한국투자신탁운용 연금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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