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른바 ‘발암 물질 고혈압약’을 국내에 판매했던 제약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국내 제약사는 당시 관련 규정이 없어 해당 의약품이 허가받았고 고의성도 없었기에 정부가 손해배상에 나서면 맞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16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 13일 제15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발암 의심 발사르탄 성분을 사용한 고혈압 치료제로 발생한 재처방 및 재조제 비용을 해당 제약사에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고했다. 문제가 된 고혈압 치료제가 전량 회수 조치되고 다른 약으로 교체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에 대한 책임을 제약사에 묻겠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아직 손배해상 청구를 공식화하겠다는 것은 아니고 검토 중인 단계”라며 “부적격 고혈압 치료제를 다른 의약품으로 교체하면서 건강보험 재정에 얼마나 손실을 야기했는지 관계 부처와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는 지난 7월 중국 원료의약품 전문업체 제지앙화아이가 고혈압 치료제에 들어가는 발사르탄 성분에 발암 의심 물질인 ‘NDMA’(N-니트로소디메틸아민) 성분이 검출됐다고 밝히면서 시작됐다. 제지앙화아이는 지난 2015년 10월 발사르탄 생산공정을 변경했는데 최근 기존에 검출되지 않았던 NDMA가 생성된다는 것을 확인하고 유럽의약품청(EMA)에 신고했다.
EMA가 유럽 내 중국산 발사르탄 성분을 사용한 고혈압약에 전량 회수조치를 통보하자 식품의약품안전처도 곧장 해당 원료를 사용한 국내 59개 제약사의 고혈압약 175종에 대해 회수조치를 내렸다. 이어 미국, 일본, 영국, 홍콩 등 주요 국가도 해당 고혈압약에 대한 판매중단 및 자진회수를 통보했다.
국내 제약사는 정부가 손해배상을 검토 중이라는 것이 알려지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해당 고혈압약을 제조할 당시 NDMA 성분 검출에 대한 기준이 없었고 NDMA의 발암 가능성도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식약처도 이번 사태가 발생한 뒤 고혈압약의 NDMA 허용 기준을 0.3ppm 이하로 제한하는 규정을 새로 도입한 만큼 국내 제약사 역시 해당 의약품 원료로 인한 피해자라는 것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관계자는 “관련 기준이 명백히 있었고 이를 위반했다면 책임 소재를 물을 수 있겠지만 해당 의약품을 제조한 국내 제약사는 어떤 고의성이나 의도성이 없었다”며 “이번 사태로 제약사 역시 적법하게 만든 의약품을 회수하고 폐기하는 비용을 부담했는데 정부가 손해배상이나 구상권을 청구한다면 법적 절차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NDMA의 발암 가능성은 아직도 논쟁 중이다. NDMA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분류한 발암물질 2그룹에 속한다. IARC는 암을 유발하거나 암과 관련이 있는 물질을 크게 4개 그룹으로 분류한다. 1그룹은 암 유발이 확실한 물질이고 2그룹은 발암이 추정되거나 가능성이 있는 것은 물질이다.
하지만 학계에서도 NDMA의 발암 가능성을 놓고 의견이 분분히다. NDMA가 합성의약품 제조 과정에서 우연히 발생하는 불순물이어서 관련 연구가 부족한 탓이 크다. 앞서 유럽에서는 NDMA 복용과 발암 가능성이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았다는 논문이 발표됐고 김헌 충북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NDMA 함유 고혈압약을 최대 용량으로 3년 복용했을 때 1만명 중 1명 정도가 암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지성기자 engi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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