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수요 전망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춤을 추고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구요? 시도 때도 없이 바뀌는 전력 수요 전망 얘기입니다.
2030년까지 당초 예상보다 12.7GW의 발전설비 규모가 줄어들 것이라는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요전망 최종안이 최근 나왔습니다. 이는 건설중단 여부가 공론화된 신고리 5·6호기(각각 1.4GW) 규모의 원전 9기와 맞먹는 수준인데요. 지난 7월에 내놓았던 초안과 비교해도 원전 1기 분량이 줄었습니다. 이쯤되면 고무줄 전력 정책이라고 할 만합니다.
재전망안에 따르면 2030년 목표 전력수요는 100.5GW로 7차 계획(113.2GW) 대비 12.7GW 줄었습니다. 새로 지어지는 원전 APR-1400 모델의 설비 규모가 1.4GW인 것을 감안하면 이번 계획으로 원전 9기 분량의 발전소를 짓지 않아도 되게 된 셈인데요. 7월 내놓았던 초안(101.9GW)과 비교해도 1.4GW 줄었습니다.
소위원회는 성장률 전망치의 하향 조정과 누진제 개편으로 인한 수요 증가 효과 제외, 수요관리 목표량 확대 등이 원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7차 계획에서 정부는 연평균 성장률 전망치를 3.4%로 추정했지만 8차 초안에서는 2.5%로 낮췄고 이번 최종안에서는 2.4% 수준까지 떨어뜨린 것이죠.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소위원회가 전력수요 전망치를 두 차례에 걸쳐 크게 떨어뜨린 가장 큰 이유는 낮아진 정부의 성장률 전망에 있습니다. 2016년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발표 당시 정부는 우리 경제가 2017년 4.0%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2025년 들어 3.0%로 떨어지겠지만 2029년까지 연평균 3.4%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2030년까지 113.2GW의 전력설비를 계획했었습니다.
문제는 정부의 중기 성장률 전망치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장기 성장률 전망치가 큰 폭으로 떨어졌다는 점입니다. 소위원회는 초안에서 연평균 성장률 전망치를 2.5%로 추정했고 이번 최종안에서는 다시 2.4%로 낮춰 잡았습니다.
초안과 최종안이 다른 가장 큰 원인도 정부의 중기 성장률 전망이 낮아진 데 있습니다. 지난 초안에서는 정부의 2016~2020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바탕으로 성장률이 △2017년 2.6% △2018년 3.2% △2019년 3.4% △2020년 3.4% △2021년 3.6% 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이달 1일 정부가 새로 내놓은 국가재정운용계획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우리 경제의 성장률을 3.0%로 대폭 낮췄습니다.
정부의 들쭉날쭉한 성장률 전망에 15년 단위 계획인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춤을 추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정책에 전력정책이 코드를 맞춘 것 아니냐는 의혹도 여전합니다.
두 달 새 말이 뒤바뀐 것도 문제입니다. 7월 초안에서는 지난해 누진제 개편으로 인해 2030년 최대 전력이 약 600㎿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었습니다. 소위원회 관계자는 “호수에 돌을 던졌을 때 먼 곳으로 가면서 물결이 점차 약해지다 결국 없어지는 것”이라며 “누진제 개편으로 인한 전력수요 증가 효과도 일시적인 것으로 시간이 갈수록 누진제 개편의 체감도가 떨어지면서 수요증가 효과도 사라진다”고 설명했다.
수요관리 목표도 상향 조정됐습니다. 소위원회는 당초 초안 대비 수요관리 목표를 400㎿ 늘려 잡았다. 2030년까지 수요관리책을 통해 13.2GW 규모의 설비를 줄일 수 있다는 게 소위원회의 계산입니다. 어떤가요. 들쭉날쭉 전력 수요 전망 과연 믿을만한 걸까요.
/세종=김영필·박형윤기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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