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이 혼돈에 빠지면서 우리나라가 브라질·영국에 이어 글로벌 환투기 세력의 먹잇감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거시건전성 3종 세트 등 탄탄히 쌓아올린 외화 안전판에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 등 방패막이는 충분하지만 최순실 게이트로 불거진 정치 불안이 투기자본에 공격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의 금리 인상을 앞두고 원화만 빠른 속도로 가치가 떨어지고 있어 금융시장의 불안도 가중되고 있다.
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일 종가 대비 4원60전 내린 1,139원90전에 거래를 마감했다. 지난달 30일(1,101원30전)과 비교하면 한 달 새 40원 가까이 올랐다.
최근 원화의 가치 절하(환율 상승) 폭은 주요국 신흥통화와 비교해도 높은 수준이다. 10월 한 달간 원·달러 환율은 3.31% 올랐다. 터키(3.04%), 싱가포르(1.99%), 대만(0.92%), 홍콩(0.01%) 등 아시아 주요 신흥국과 비교해도 높은 수준이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결정 이후 투기세력의 공격으로 급격히 가치가 떨어진 영국 파운드화(5.14%) 다음으로 절상 폭이 컸다.
변동 폭이 큰 것도 문제다. 올해 10월 말까지 원·달러 환율의 일일 변동 폭은 7원60전이었다. 2015년(6원58전)과 비교하면 15.6%, 2014년(4원89전)에 비해서는 55.5%나 상승했다.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의 탄핵 정국에서 요동쳤던 브라질 헤알화나, 브렉시트 결정 이후 급락한 영국 파운드화처럼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이 같은 외환시장의 큰 변동성이 외부 충격과 맞물리게 되는 경우다. 오는 8일(현지시간) 미국 대선이 실시되고 12월에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인상할 채비를 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에 한 차례 충격을 주고 그쳤던 브렉시트 이슈도 점차 현실화하고 있다. 먹잇감을 찾아 배회하고 있는 글로벌 투기자본에 외환시장을 내줄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안동현 자본시장연구원장은 “투기자본이 가장 좋아하는 게 정치 불안인데 1990년대 외환위기 겪은 9개 국가 중에서 8개국이 대선이 있던 해에 투기자본의 공격을 받아서 고꾸라졌다”며 “여기에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국내 채권금리가 오를 경우 막대한 민간 부채도 공격의 고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1996년 아르헨티나와 폴란드가 투기세력의 공격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양호한 기초여건이 아니라 국내 정치 여건의 안정”이었다며 “지금은 성장률이 몇 퍼센트냐로 얘기할 상황이 아니라 정치 불안을 줄이고 다가올 외부 충격에 충분히 대응할 태세를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외환당국은 이 같은 우려를 아직은 ‘기우’라고 평가한다. 탄탄한 외화 안전판과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 3%대에 육박하는 성장률 등 기초요건으로 직접적인 공격 대상이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 외환당국의 한 관계자는 “환투기 공격이라는 게 원화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환율 하락에 베팅하는 이른바 ‘쇼트세일(Short Sale)’인데 국내 외환시장에서는 이를 할 수가 없다”며 “역외선물환(NDF) 시장에서 선물을 할 수 있기는 하지만 이도 엄밀하게는 쇼트세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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