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공과대학과 아파트 등이 인접한 포항시 지곡로 일대에선 지난 2011년부터 대공사가 진행됐다. 12만여㎡(3만6,000여평)의 부지 위에 총길이 1.1㎞에 달하는 대규모 시설이 지어진 것이다. 위용을 들어낸 것은 인류가 만든 가장 거대하고,가장 고성능인 현미경 ‘4세대 방사광가속기’다. 번개가 번쩍이는 순간마저 수십억 토막 낼 정도로 짧은 시간단위까지도 잡아내며 원자 내부구조도 선명하게 보여주는 첨단 장치다.
4,200여억원이 투자된 이 거대 시설은 이미 국내에 건설된 3세대 방사광가속기보다 성능이 월등하다. 기존의 3세대 방사광가속기가 포착할 수 있는 물질의 크기는 수백 나노미터nm급(1nm=10억분의 1m)까지여서 미세nm급 물리현상 규명에는 한계가 있었다. 반면 4세대 가속기는 1nm 크기의 현상까지도 들여다볼 수 있다. 포착할 수 있는 단위 시간도 3세대에선 100억 분의 1초 수준이었던데 비해 4세대는 1,000조분의 1초의 찰나를 잡아낸다. 무엇보다도 이 같은 관측을 위해 사용되는 빔의 에너지가 1억배 차이를 보인다. 3세대 가속기가 쏘는 빔이 태양빛의 약 1억배 수준이라면 4세대는 태양빛의 100경배에 이른다.
이런 초고성능의 현미경이 왜 필요한 걸까. 무엇보다 인체를 비롯한 생명현상의 미스테리를 풀어 질병치료, 생명연장의 길을 열 수 있다. 특히 단백질 구조 해석에서 탁월한 연구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현재까지 인류가 해독한 단백질 구조는 전체의 5%가량에 불과했는데 최소 1nm 단위로 까지 구조를 파해 치면 그동안 불가능했던 신약을 개발할 수 있다. 또한 죽은 냉동 세포시료를 사용해야 했던 3세대 가속기와 달리 4세대에선 살이 있는 시료를 쓸 수 있어 분자 수준에서 생명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암세포 등이 어떻게 증식하는지 등을 생방송 보듯 정밀 관찰해 억제 치료방법을 개발하는 길을 열 수 있다”는 게 미래창조과학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심지어 식물 엽록소가 어떻게 광합성을 하는지 실시간으로 관찰해 그 원리를 파악하고 이를 이용해 인공 광합성 기술을 개발하는 에너지혁명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이밖에도 현재보다 정보처리속도가 훨씬 빠르고 소형화된 반도체를 제작하고, 각종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촉매의 작용을 정밀관찰해 자동차 배기가스를 줄이는 신소재 촉매를 탄생시킬 가능성도 있다고 포항가속기연구소측은 설명했다.
이번 가속기 건설 과정에서 얻은 설비제조 기술과 노하우도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속기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가속관’을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해당 국산제품은 관련 분야 선도업체인 일본 미쓰비시보다 1.5배 가속성능이 좋다고 정부는 소개했다. 고출력 빔을 정확한 곳으로 모아서 쏴주는 전자빔 위치기도 토종화돼 미국의 4세대 방사광 2단계 사업용으로 65개 제품(9억4,000만원 상당) 이 수출되는 결실이 맺어졌다. 이밖에도 전자빔 집속에 필수적인 4극 전자석과 전량 해외에 의존해온 에너지 배가장치 등도 우리 기술로 만들어 수입품을 대체할 수 있게 됐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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