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머시 가이트너 전 미국 재무장관은 금융위기 당시 고용 시장을 평가할 때 두 가지 지표를 주로 봤다. 하나는 실업률, 다른 하나는 장기실업자다. 실업률이 올라가는 것은 ‘양’적인 고용 시장이 악화하는 것으로 판단했고 장기실업자가 늘어나는 것은 ‘질’이 나빠지는 것으로 진단했다. 실업률뿐만 아니라 장기실업자까지 급증하는 것을 경기에 좋지 않은 신호로 받아들이고 대대적인 부양책을 펴며 고용 시장의 충격을 완화했다.
한국의 고용 시장도 사상 최악의 청년실업률, 100만명을 넘어선 실업자 등 양적인 면뿐만 아니라 질도 악성화되고 있다. 6개월 이상 취업을 하지 못한 ‘만년 백수’가 11만명에 육박해 12년 만에 최대치를 경신했다. 향후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 고용 시장이 극도로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7일 통계청에 따르면 실업자 중 6개월 이상 구직활동 중인 사람은 올 들어 지난 4월까지 평균 10만8,000명이었다. 연도별 1~4월 평균 장기실업자 추이를 보면 카드 대란으로 경기가 급랭했던 2004년(11만1,000명) 이후 가장 많았다. 장기실업자는 지난해 7만2,000명에서 1년 사이 50%(3만6,000명)나 폭증했으며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8만6,000명)보다 많았다. 1년 이상 초장기 실업자도 불어나고 있다. 올해 4월까지 평균 5,000명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7,000명) 이후 8년 만에 가장 많았다.
취업하고 싶지만 일자리가 없어 구직을 포기한 구직단념자도 빠르게 늘고 있다. 올 들어 4월까지 평균 45만9,000명으로 2014년의 30만2,000명에서 2년 사이 15만명 넘게 급증했다. 이들은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돼 전체 실업률에는 잡히지 않는다. 4월 현재 공식 실업률이 3.9%지만 실제는 더 높다는 의미다.
고용 시장이 악성화되는 것은 경기 둔화, 정년 연장, 일자리 미스매치 등 구조적 요인에다 구조조정으로 기업 심리까지 움츠러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성장률은 2014년 3.3%에서 지난해 2.6%로 하락했으며 올해는 2%대 중반도 장담할 수 없는 실정이다. 올해는 직원 300인 이상 대기업, 내년부터는 전체 기업에 적용되는 정년 60세 의무화도 기업들의 채용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 구직자와 기업의 입장이 달라 발생하는 일자리 미스매치 문제도 여전하다.
김광석 한양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는 “장기실업자가 늘어나는 것은 고용 시장을 이탈했다가 장기간 복귀를 못하는 사람이 늘고 청년층도 쉽게 고용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라며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는 하반기에는 고용 시장이 더욱 악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세종=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