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금융지주가 조선·해운업종 구조조정 여파로 ‘충당금’ 폭풍에 갇혔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산 확대를 위해 적극적으로 늘렸던 대기업 여신이 최근 조선·해운 등 주요 산업이 부진에 빠지면서 부실 여신이라는 부메랑으로 변해 돌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농협금융은 지난해 4·4분기 STX조선해양 관련 충당금으로 적자전환한 데 이어 올 1·4분기에도 창명해운이 법정관리로 들어가면서 순이익이 급감했다. 2·4분기 이후 전망은 더 심각하다. STX조선과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여신 규모가 2조원이 넘는데다 3년 여전 자율협약에 들어갔던 STX조선마저 최근 다시 법정관리로 전환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충당금 부담이 급격히 커지면서 2·4분기 또다시 적자전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금융은 오는 2·4분기에도 STX조선 등 조선 ·해운업 구조조정 행방에 따라 많게는 5,000억원 이상의 충당금을 쌓아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농협금융은 대기업 여신 비중이 시중은행들 대비 높은데다 여신이 구조조정 대상 업종인 조선·해운 등에 집중돼 있어 2·4분기 이후에도 충당금 여파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게 금융권의 관측이다.
농협금융은 지난달 29일 1·4분기 당기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64.2%(578억원) 줄어든 322억원에 그쳤다고 밝혔다. 분기 실적 발표일은 원래 지난달 25일이었으나 조선·해운 구조조정이 갑자기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29일로 연기됐다. 충당금 적립 대상을 어디까지 설정해야 할지 내부 고민이 컸기 때문에 실적 발표일을 조정했을 것이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농협금융의 실적 감소는 조선·해운업종 충당금 적립에 따른 결과다. 농협금융의 주력 계열사인 농협은행의 1·4분기 충당금 전입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61.9% 늘어난 3,328억원으로 이 중 최근 법정관리에 들어간 창명해운 충당금으로 1,944억원을 쌓았다. 창명해운의 은행권 익스포저(지급보증·대출) 6,000억원 중 농협은행이 4,032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창명해운 외에도 채권단 자율협약을 받고 있는 STX조선과 현대상선의 충당금도 각각 413억원, 247억원 수준이었다.
문제는 2·4분기 이후에도 농협금융의 충당금 공포는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농협은행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에도 각각 761억원, 758억원의 여신이 있다. 특히 대우조선(1조5,000억원)과 STX조선(7,700억원)에 대한 여신 규모는 2조원이 넘는다. 농협은행은 STX조선의 채무를 현재 고정이하여신으로 분류해 대손충당금을 쌓고 있지만 법정관리로 갈 경우 ‘회수 의문’으로 분류해야 한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고정이하의 경우 충당금을 20% 이상 쌓으면 되지만 회수의문의 경우 50% 이상을 적립해야 해 충당금 부담이 심각한 수준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농협은행의 지난해 말 기준 부실채권비율은 2.27%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반면 충당금 적립 비율은 85.4%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신한(172.8%), 국민(151.6%), 우리(122.0%) 등 시중은행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에 김용환 농협금융 회장은 지난달 27일 농협은행 구조조정 부서에 불시방문해 직원들을 격려하는 등 전사적으로 대기업 여신 관리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김 회장이 개별 부서를 방문한 것은 2014년 4월 취임 후 2년 만에 처음이다. 이경섭 농협은행장도 1월 취임 후 가장 먼저 대기업 여신 관련 보고서를 주문하는 등 관련 대책 마련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보리기자 bori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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