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7시. 호찌민시 중심부 벤탄 시장 주위는 오토바이들이 메우는 엔진 소리로 가득 찼다. "베트남은 불황을 모른다"는 이정순 KOTRA 베트남 수출인큐베이터 소장의 말이 실감 났다. 이 출근 행렬 중 상당수는 15㎞가량 떨어진 산업단지인 사이공하이테크파크(SHTP)로 들어간다. 특히 오는 3월이면 SHTP에 삼성전자가 70만㎡(21만평) 규모로 조성한 소비자가전(CE) 공장이 가동돼 협력 업체들이 새로운 사업 기회를 잡을 것으로 보인다. 이 소장은 "글로벌 기업이 베트남에 생산거점을 구축하면서 국내 중소기업의 대베트남 수출도 날개를 달고 있다"며 "베트남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체결 등으로 재편되고 있는 글로벌 밸류 체인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어 베트남 시장의 전략적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류가공업체 팬코의 김흔태 베트남 법인장도 "앞으로 인건비가 연 10%씩 오른다 해도 앞으로 10년간 베트남을 당할 시장은 없다"고 강조했다.
베트남 경제의 기세가 대단하다. 전 세계적인 경기 부진이 그간 버팀목 역할을 했던 중국마저 고꾸라지게 했지만 베트남은 불황 무풍지대에 있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6.68%(베트남 통계청 추정치)를 기록했을 정도. 이는 베트남 정부 목표치(6.2%)와 아시아개발은행(ADB) 전망치는 물론 동남아 최대 경제권인 인도네시아(4.8%), 말레이시아(4.7%), 태국(2.7%) 등도 압도하는 수치다.
◇부품의 중간 기착지, '수출 관문' 베트남=베트남은 인구가 9,000만명, 30세 이하 인구가 전체의 절반에 이른다. 임금이 싼 것은 최대 장점이다. 섬유 등 제조업체 노동자의 한 달 평균 임금은 한화로 15만~30만원으로, 중국(69만~90만원)의 절반도 못 미친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사이공·하노이·다낭하이테크파크), LG전자(하이퐁) 등이 이곳으로 생산 거점을 옮기고 있다. 국내 중소 협력업체의 수출이 늘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전자기기 부품 업체 대한공조의 유희민 베트남법인장은 "베트남에서 만드는 제품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간다고 보면 된다"며 "앞으로 베트남 경제가 더 성장하면 베트남 내수 시장에서도 한국산이 더 팔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센서업체 한영넉스의 옥승엽 베트남 사무소 소장도 "매년 판매량이 두 배 넘게 늘어나고 있다"며 "판매량 증가에 따라 올해 베트남 법인으로 전환한다"고 말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발효도 베트남 경제의 승천을 도울 것으로 전망된다. TPP로 대미국 섬유 수입 관세 5~30%가 사라져 섬유 수출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베트남은 TPP로 경제규모(GDP)가 1,853억달러 수준(2014년 기준)에서 2025년 2,188억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베트남이 투자를 발판삼아 제조업 강국을 꿈꾸며 자국 업체를 육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 장기적으로 중간재 수출이 위축될 수 있는 탓이다. 특히 TPP가 발효되면 관세혜택과 원가절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국내 섬유업체의 생산 라인도 베트남 이전이 불가피하다. 현지 협력업체 관계자는 "이곳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들은 베트남 현지 생산업체 단가를 기준으로 납품가를 정한다"며 "결국 국내 생산 라인을 옮겨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류 대비 미흡한 소비재 수출, FTA 발효 계기로 비중 늘려야=베트남이 수출 유망지로 부상하고 있지만 소비재 수출 비중은 10%(2015년 기준)로 낮다. 한국산 제품의 가격대가 베트남의 소득 수준에 비해 높다는 게 문제다. 중산층 두께가 얇다 보니 비중 확대가 쉽지 않다는 게 현지 기업들의 고충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한·베트남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를 모멘텀으로 삼을 수 있다. 올 1월1일을 계기로 2차 관세 인하가 단행돼 화장품·전기밥솥 등을 비롯해 식품 등도 현지 공략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문병철 산업통상자원부 베트남 상무관은 "한류 열풍에 비해 소비재 수출 볼륨이 작다"며 "FTA를 활용해 인구 9,000만명의 내수시장에 우리 제품의 수출을 더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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