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한 관계자는 "정부는 매년 9월 후반 즈음 (이듬해)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할 때마다 기계적으로 직전 3개월간 환율 평균을 적용해 기준환율을 정해왔다"며 "그러다 보니 9월 이후 환율이 급변하면 오차가 커지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미국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의 충격파가 8월을 전후로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미쳤던 지난 2008년도 사정이 바로 그랬다. 당시 정부는 다음해 예산안을 짜면서 2009년도 기준환율을 달러당 1,000원으로 잡아 국회에 제출했다. 비록 국회가 이를 심사하는 과정에서 100원 더 올렸지만 결국 2009년 평균치는 정부 예측보다 276원이나 오른 1,276원35전(종가 기준, 한국은행 집계)을 기록했다. 오차율이 무려 16%에 이른 것이다.
2012년도 예산안에서도 정부는 1,070원을 기준환율로 삼았으나 실제 시장 종가는 5.3%(56원76전)나 높은 평균 1,126원76전을 기록했다. 올해 예산안은 더 가관이었다. 정부가 지난해 9월 2013년도 예산안을 제출하면서 세출 기준환율은 1,130원으로 잡고도 세입 기준환율은 1,080원으로 전제하는 실수를 범한 것이다. 정부는 국회에 사과하고 세입ㆍ세출 환율을 모두 1,130원으로 수정했다.
국회는 이렇게 정부가 제출한 기준환율 1,130원을 손대지 않고 그냥 통과시켰다. 이미 환율 급락이 예견된 상황이었음에도 얼렁뚱땅 넘어간 셈이다. 다른 예산은 몰라도 최소한 외국환평형기금 항목이라도 수정해 환율 변동에 외환 당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어야 했지만 이 역시 원안대로 통과됐다.
여당의 한 의원은 "기준환율을 고치려면 외화예산(세출)에서부터 세입에 이르기까지 이것저것 뜯어봐야 할 것이 많고 그렇게 하면 세입ㆍ세출 간 계수가 맞지 않는 경우가 발생해 다시 수정하는 데 상당한 기간이 요구될 수 있다"며 "연말에 다른 예산 쟁점도 많은데 환율까지 고치려면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 역시 "정부가 새해 예산안을 짤 때 직전 3개월 평균환율이 아닌 다음해의 예상 환율을 적용하면 마치 정부가 그 수준으로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해 개입하겠다는 뜻으로 곡해돼 오히려 외환시장의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국회의 또 다른 관계자는 "사실 기준환율을 고치는 작업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며 "이미 정부가 환율 변화에 따른 세입ㆍ세출 변화 시뮬레이션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고 여야가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할 것을 요구했어야 했는데 그냥 '과거에 하던 대로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에도 외환시장의 불안은 계속 될 것으로 보여 최소한 정부가 기준환율 산정방식을 바꾸든지, 아니면 국회가 예산안 심의과정에서 최신 환율흐름을 적용해 고치는 방식을 선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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