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예산안 조기배정이 사실상 물 건너가면서 경기회복 흐름을 이어가려던 정부 방침에 비상이 걸렸다. 국회가 새해 예산안의 법정 처리 시한(12월2일)을 넘긴 데 이어 회계연도를 불과 열흘 남짓 남겨둔 상황에서 계수조정소위원회조차 구성하지 못하고 있어 재정 조기집행을 통해 경기회복의 기운에 속도를 내려던 정부의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이에 따라 일시적인 고용 충격이 예상되는 것은 물론이고 경제위기에 따른 서민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각종 민생사업이 제때 집행되지 못할 위기에 처하는 등 연말연초 '재정공백' 사태마저 우려된다. 이런 가운데 한나라당이 새해 예산안 단독 처리 가능성을 열어 놓고 정부 측과 간담회를 갖는 등 각 상임위에서 넘어온 예산안을 검토하는 작업에 들어가 주목된다. 한나라당이 20일 오후 정책위의장실에서 정부 측과 새해 예산안 조정 작업을 벌인 것으로 확인됐다. 한나라당은 계수소위 심사를 생략, 민주당을 배제한 채 친박연대와 예산수정안을 만들어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강행 처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예산안 조기배정 사실상 '물 건너가'…재정공백 우려=기획재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20일 "회계연도 개시 전 예산을 배정하려면 국회의 예산안 통과 후 최소 5일 소요된다"면서 "예산안 통과 시점이 크리스마스를 넘기면 물리적으로 회계연도 개시 전에 배정되기 어려운데 현 상황을 보면 크리스마스 이전 통과가 매우 불투명하다"고 밝혀 조기 배정문제가 사실상 물 건너갔음을 시사했다. 이 관계자는 "설령 연내 조기 재정되더라도 지난해와 같은 경기진작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정부는 예산이 12월 말 극적으로 통과된다 하더라도 열흘 정도의 재정공백 사태는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12월28일 예산이 통과된 지난 2007년 경우 이듬해 1월4일에야 예산 배정이 이뤄지고 최초 자금 집행일은 1월11일이었다. 열흘 남짓의 재정공백이 생겼던 것이다. ◇확장적 재정정책 브레이크…정부 '비상대책 수립' 돌입=정부의 또 다른 고민은 조기 재정집행마저 늦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올해 재정집행 관리 대상 사업비 272조8,000억원 중 11월까지 92%에 달하는 250조2,000억원이 집행되면서 12월에 남은 돈은 22조원 정도다. 그나마 12월 사정은 내년 1월에 비해서는 나은 편이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당장 연말에는 큰 문제가 없겠지만 내년 1월 초에는 재정집행에 상당한 어려움이 초래될 것"이라면서 1월 초 재정공백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이에 정부는 예산안이 해를 넘겨 처리되는 초유의 사태에 대비해 재정부를 중심으로 재정집행 시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비상계획 수립에 들어갔다. 재정부는 9일 각 부처의 기획조정실장 회의를 소집해 조기집행 준비와 함께 새해 이전이라도 관련 절차를 진행하라는 지침을 전했다. 또 통상 1월 말 각 부처에 전달되는 예산집행지침을 조기에 내려보내기로 했다. 윤증현 재정부 장관은 17일 "예산이 연내 통과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비상계획을 세우라고 각 부처에 요청했다"면서 "예산이 늦게 통과되면 사업 부서가 크게 타격을 받으며 취약계층에 대한 재정 조기 집행 문제에 차질을 빚게 된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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