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개발연구원(KDI)의 전력산업 구조개편 용역보고서 원안과 수정안을 비교해보면 한국전력의 판매 부문 분리, 화력발전 5사 독립공기업화 추진, 계통운영과 송전망 소유의 통합 등 큰 틀에 있어 '경쟁ㆍ효율ㆍ책임'이라는 점은 일치한다.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한전ㆍ한국수력원자력 통합 문제에 있어 자회사 체제를 유지하고 이해관계 조정, 인력 운용의 효율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새로운 대안이 제시된 것이다. 결국 정부 측이 원하는 방안은 한전ㆍ한수원 통합이 아니라 현 체제를 유지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로서는 방폐장을 유치한 지역주민(경주)을 설득하기 위한 대안마련에 부담을 느낀 나머지 용역 결과에 일정 부분 수정을 요청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식경제부의 한 고위관계자 역시 지난달 KDI 용역 결과 발표가 미뤄진 데 대해 설명하면서 "선택할 수 있는 여러 옵션을 대안으로 제시해달라고 했고 그래서 더 시간이 필요해졌다"고 밝힌 바 있다. ◇한전ㆍ한수원 재통합 사실상 물 건너간 듯=정부의 대안 제시 요청으로 한전ㆍ한수원 통합 문제에 대해 상반된 두 가지 대안이 나옴에 따라 두 기관의 재통합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관측이다. 재통합의 가장 큰 걸림돌은 경주시 관계자들의 반발. 실제 경주시에서는 약 300여명이 지난 9일 상경해 이날 열린 전력산업개편 공청회를 파행으로 이끌기도 했다. 이들은 "한전과 한수원이 통합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오기 전에는 안 내려간다"며 15분간 단상을 점거했다. 하지만 KDI 보고서 원안에는 이러한 반발이 예상됨에도 성장성을 고려해 한전ㆍ한수원 재통합에 무게중심이 놓여 있다. 원자력산업 성장을 위해서는 향후 막대한 규모로 예상되는 해외시장 진출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 재통합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또 한수원 이전이 예정된 지자체의 상당한 반발이 예상되므로 지자체를 설득할 수 있는 대안마련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KDI는 수정안 발표 뒤 "한전ㆍ한수원 통합 결과는 정량적인 측정이 불가능하고 정책적 판단이 들어가는 문제이기 때문에 어떠한 결론도 내릴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한달 만에 상반된 결과(?)=이번 수정안 발표에서 또 하나 의문시되는 부분은 양수발전기 이관과 제주 지역 발전소 통합 사안이다. 보고서 원안에는 제주 지역 발전소를 한전에 통합하는 것에 대해 현재로서는 불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수정안에는 완전히 결과가 뒤바뀌었다. 또 한전으로 이관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양수발전기도 수정안에는 한수원으로 이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불과 한달 만에 180도 다른 해석이 나온 데 대해 일각에서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조성봉 박사는 "4~5분 만에 가동할 수 있는 양수 수력과 오랜 기간 시운전을 해야 하고 켜기도 어려운 원자력은 차이가 있다"면서 "원자력과 양수발전을 같이 가면 경쟁구조상 맞지 않다"고 양수발전기의 한수원 이전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한국전력기술(KOPEC), 한전KPS, 한전KDN 등 자회사 현행 체제로=KDI 보고서 원안 중 미발표된 사안을 보면 KOPECㆍ한전KPSㆍ한전KDN 등의 자회사는 현행 체제가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보고서는 "KOPECㆍKPSㆍKDN의 경우 민간 부문과의 경쟁 가능성이 존재하므로 효율적인 아웃소싱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자회사 유지가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다만 한전원자력원료(KNF)는 한수원에 통합하고 한전의 전력연구원과 한수원의 원자력발전기술원을 통합해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정유형 K-파워 상무는 이번 KDI 보고서에 대해 "전력산업도 항공ㆍ통신과 같이 경쟁체제로 운영하는 것은 중요하다"면서 "타임테이블이 없어 로드맵이 제시되지 않은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민영화 계획이 없는데 현재 공기업들의 부채를 감안하면 실제 투자여력이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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