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가 통신시장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초고속 인터넷과 초고속 이동통신이 급속히 발전하고 대용량 데이터 전송이 가능해지면서 통신망에 실어 보낼 수 있는 내용물을 확보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이 통신업계 최대의 과제가 됐다. 글로벌 통신업체들이 인수합병(M&A)과 제휴 등 콘텐츠 확보를 위해 치열한 각축을 벌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콘텐츠 무한경쟁 시대를 맞은 통신업계의 현주소와 전망을 5회에 걸쳐 분석해본다. #1. 지난 4일 세계 최대 휴대폰 제조업체인 노키아의 ‘투자자의 날’ 행사. 스트라이프 넥타이를 맨 올리 페카 칼라스부오 노키아 최고경영자(CEO)가 향후 사업계획을 설명하던 도중 뜻밖의 말을 했다. “우리 뮤직폰 사용자들이 유니버설뮤직의 음악을 무제한 다운로드 받을 수 있게 하겠습니다.” 순간 청중석에는 물을 끼얹은 듯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하루 뒤 ‘노키아가 콘텐츠 시장 점령에 나섰다’는 제목의 외신이 지구촌을 강타했다. #2. 국내 최대인 SK텔레콤 영상사업부는 최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을 보내고 있다. 내년 설 연휴 대목에 개봉될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코리아’ 때문이다. 총제작비 60억원 가운데 약 20%를 투자했지만, 이보다는 SK텔레콤이 자체 영화배급 사업에 첫 발을 내딛는 작품이라는 중요성 때문에 모두가 긴장하는 모습이다. #3. 국내 통신업계의 맏형격인 KT 콘텐츠전략팀은 요즘 방송사를 쫓아다니기에 정신이 없다. 최근에는 IPTV 본격 시행을 앞두고 콘텐츠 확보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특히 연말까지 EBS의 교육 콘텐츠를 선점하기 위해 포털인 ‘ebs.co.kr’의 사이트 운영 대행을 맡기도 했다. 콘텐츠가 통신시장의 지형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지구촌 통신과 관련된 모든 업체들이 콘텐츠 확보에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고 있다. 대상 영역도 다양하다. 음악부터 영화ㆍ동영상ㆍUCC 등 돈이 될 만한 사업이다 싶으면 순식간에 기업들이 달려온다. 콘텐츠가 곧 경쟁력인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3G 활성화, IPTV 법제화 ‘콘텐츠 수요 급증’=올해 이동통신 서비스의 최대 화두는 3세대(3G) 서비스 경쟁이었다. 3G 서비스인 WCDMA를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휴대폰을 통한 무선인터넷 환경은 급속도로 개선됐다. 최근 SK텔레콤은 7.2Mbps 속도를 내는 3G 영상폰을 선보였다. 1년 전까지만 해도 휴대폰 무선인터넷을 통해 MP3 한 곡을 받으려면 수십 분 이상 기다려야 했지만 이제는 3~4초면 가능하다. 하지만 3G 서비스를 하는 이동통신업체들은 배가 고프다. “초고속 이동통신이라는 고속도로가 뚫렸는데 달리는 차가 거의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콘텐츠라는 자동차를 많이 팔아야 고속도로가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 드디어 법제화의 물꼬를 튼 IPTV도 콘텐츠의 주가를 띄우는 중요한 요소다. IPTV의 성공 요소는 가입자들의 기호를 얼마나 잘 맞출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다양한 가입자의 수요를 맞추려면 무엇보다 콘텐츠의 양이 많아야 한다. 단순히 많아서도 안 된다. 공중파 방송이나 케이블TV 등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양적으로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차별화된 내용물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콘텐츠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음악부터 영상까지 전방위 공략=콘텐츠 수요 확대는 주요 업체들의 시장공략을 위한 다각적인 움직임으로 연결된다. KT의 경우 콘텐츠 확보를 위해 총 400억원 규모의 투자재원을 조성한 후 이를 바탕으로 외부 펀드에 참여하거나 직접 작품 투자에 나서는 등 공세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최근에는 영화배급 사업에도 진출, 비슷한 시기에 같은 서비스에 나선 SK텔레콤과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반면 SK텔레콤은 음악과 게임ㆍ영상방송 등 3개 분야로 나눠 콘텐츠 시장을 포위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음악의 경우 ▦벨소리 ▦컬러링 ▦멜론 등 신규 서비스로 나눠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게임은 모바일 게임과 온라인 게임을 동시에 노리고 있다. KTF와 LG텔레콤 역시 내년을 ‘콘텐츠 경쟁력 강화의 해’로 정하고 영화와 음악 시장 공략을 강화할 예정이다. 이처럼 유무선 통신업체들의 콘텐츠 확보가 본격화되면서 음악이나 영화, 각종 사진을 휴대폰으로 받는 데이터서비스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SK텔레콤의 무선데이터 사용건수는 지난 10월 말 현재 10억8,000만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8%나 증가했고 KTF의 1인당 데이터 사용량도 같은 기간 동안 50% 가까이 늘어났다. ◇가입자 포화, 성장 정체 ‘콘텐츠로 뚫어라’=과거 통신업체들은 단지 음성통화 서비스만 제대로 제공하면 됐다. 따라서 통화할 수 있는 전화선이나 주파수, 그리고 이를 전달할 수 있는 전화기나 휴대폰 단말기, 인터넷 망, 그리고 사업권만 가지면 ‘통신사업자’로서 명함을 내밀 수 있었다. 통신 경쟁력이라면 얼마나 선명한 음성이나 인터넷 영상을 상대방에게 끊김현상 없이 전달할 수 있는가가 전부였다. 하지만 이동통신과 초고속인터넷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통신업체들의 수익성은 제자리를 맴돌기 시작했다. 실제 ‘통신품질’은 그야말로 ‘기본 중의 기본’에 속한다. 이제는 ‘품질’ 이상의 것을 제공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통신사업이 정체기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KT의 매출액은 벌써 5년째 11조원대를 맴돌고 당기순이익 역시 1조~1조2,000억원대에 머물고 있다. SK텔레콤도 마찬가지. SK텔레콤의 매출액은 최근 5년 동안 8조6,000억원에서 10조6,000억원으로 늘었지만 당기순이익과 영업이익은 오히려 1,000억원 가까이 하락했다. 통신업체들이 콘텐츠라는 새로운 수익원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내년 통신업체의 화두는 누가 뭐라 해도 콘텐츠”라며 “이 시장을 지배하는 사업자가 통신시장을 장악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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