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의 고민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경기흐름을 짚을 수 있는 지표들은 혼미하고 콜금리로 대표되는 통화정책의 고려변수들은 꽈배기마냥 잔뜩 꼬여 어느 것에서도 뾰족한 해답을 찾기 힘들다. 오는 8일 통화정책회의를 앞둔 금융통화위원회의 한 위원은 “정말 (결정하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고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민간연구소의 한 선임 연구위원은 “경기흐름도, 콜금리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스테이지(stage)’”라고 꼬집었다. 한은은 지금 수차례에 걸쳐 금리를 올릴 기회를 놓친, 정책 실기의 인과응보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고장난 ‘경기 나침반’= 5ㆍ31 지방선거 이후 강력한 후폭풍에 휩싸여 정부 정책이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만큼 한은의 통화정책도 중심을 찾기 힘든 상황이다. 개별 변수마다 이언령비언령식의 해석이 가능해 ‘2~3개의 바늘을 갖고 있는 나침반’을 연상시킬 정도다. 금리 인상과 동결 요인들이 워낙 팽팽해 금통위원들마저 ‘도박’을 해야 할 판이다. 당장 핵심 고려요인인 부동산시장부터가 헷갈린다. 주택 값만 놓고 보면 ‘버블 세븐론’ 이후 하향 안정 조짐을 보이고 있는 시장에 방점을 찍는다는 의미에서 인상요인은 충분하다. 지방선거에서 여당의 완패로 부동산정책이 흔들리는 양상이어서 금리인상은 흔들리는 정책의 안전판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재건축시장을 중심으로 하락 조짐이 보이고 종합부동산세 등 세금폭탄이 집중 투하되면 하락세가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판국에 금리인상이 자칫 시장을 경착륙으로 이끄는 독약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전반적인 경기상황도 정책 결정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외견상으로는 경기 하강 조짐이 뚜렷하고, 이는 금리를 올려서는 안된다는 주장의 강력한 근거가 되고 있다. 하지만 6월에 올리지 못하면 하강 속도가 빨라질 하반기, 심지어 내년까지 인상은커녕 인하 압력에 시달릴 것이라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이래도, 저래도 ‘욕’ 먹는다=지난달 금리를 못 올리게 만들었던 환율이 안정세를 되찾으면서 인상의 명분으로 작용하는 듯하지만 이 또한 잘못된 예단일 수 있다. 환율 하락의 기조 자체는 계속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는 헷갈리는 대외요인과도 연결된다.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지난달 초까지도 금리인상을 중단할 것이 기정 사실화됐었지만 인플레이션 우려로 금리를 또 올릴 수 있다는 시각이 도리어 늘고 있다. 미국도 경기둔화 우려와 인플레이션 속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우리로서는 미국이 금리를 올릴 경우 양국간 금리 격차가 1.25%포인트까지 벌어지는 점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미국 등이 인상할 것으로 예단해 콜금리를 올렸다가 다른 나라들이 경기둔화를 우려해 그대로 놓아둘 경우 우리 통화 당국은 경기위축에 대한 비난을 뒤집어 쓸 수밖에 없다.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식물 금통위’, 올리면 ‘눈치 없는 금통위’라는 비판에 직면하기 십상인 상황, 한은 금통위는 지금 심각한 딜레마에 처해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