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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의 소득세 개편 용역보고서 초안이 근로소득공제율을 대폭 축소하는 방안을 담은 것은 과세표준 상향 조정에 따른 세수 구멍을 막기 위한 고육책으로 풀이된다.
조세당국자의 한 관계자는 "초안대로 근로소득공제율을 현재의 최고한도인 80%에서 향후 50%로 내리면 연간 2조원가량의 세수(세금수입)를 아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제율 축소로 2조원가량을 확보하면 정부는 과표 상향조정 실행시 발생하는 세수공백 부담을 다소 덜어낼 여유를 얻게 된다.
과표란 납세자가 번 소득에서 각종 공제, 경비 등을 뺀 금액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과표에 세율을 곱하면 대략적인 납부 세액이 산출된다.
그렇다면 과표구간이 상향 조정되면, 다시 말해 현실화되면 세수에 공백이
생기는 것은 왜일까. 현행 소득세는 과표구간을 5개(종합소득세 기준)로 나누고 납세자의 소득이 낮은 과표구간에 속하면 비교적 낮은 세율을 부과한다. 반면 높은 과표구간에 속하면 높은 세율이 매겨지는 누진세율 구조다. 따라서 만약 특정 과표구간의 상ㆍ하한선이 높아지면 상ㆍ하한선을 살짝 넘어선 소득 납세자가 바로 아래 구간으로 편입돼 상대적으로 낮은 세율을 적용 받게 된다. 납세자의 세부담이 줄면 정부 세수는 줄어들어 재정에 다소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현행 소득세 구간 중에는 '8,800만원 초과~3억원 이하(세율 35%)' 구간이 있는데 그 하한선이 만약 '1억3,000만원 초과~3억원 이하'로 변경되면 기존에 35%의 세율을 적용 받던 1억3,000만원(과표 기준) 소득자는 그보다 낮은 과표구간의 세율(24%)을 부과 받게 된다.
재정부가 소득세 과표 현실화를 추진할 경우 세수감소가 우려되는 만큼 조세연구원은 이번 용역 초안에서 그 보완책으로 근로소득세율 공제 축소를 다각적으로 시뮬레이션해본 것이다.
하지만 근로소득공제율을 이처럼 대폭 축소하더라도 과표 현실화에 따른 세수감소를 완전히 메울지는 미지수다. 초안이 제시한 과표 현실화 시나리오 중 과표구간을 전면 상향 조정하는 안은 연간 최대 5조~6조원에 달하는 세수감소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나리오는 현재의 과표구간 모태가 처음 적용된 지난 1997년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물가를 모두 반영해 각 구간별 상ㆍ하한선을 올리는 내용이다. 따라서 세수 감소폭이 클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초안은 차선책으로 5개의 과표구간 중 일부 구간만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예를 들면 두 번째로 높은 세율을 적용 받는 '8,800만원 초과~3억원 이하' 구간을 '1억3,000만원 초과~3억원 이하'로 변경하는 방안이다. 이 구간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8,800만원 초과' 구간이었으나 국회가 연말 소득세법을 개편해 갑자기 '3억원 초과' 구간을 신설한 탓에 현재의 모습에 이르게 됐다. 이 구간은 폭이 지나치게 큰 만큼 하한선을 높여 폭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여권과 학계 등에서 제기되고 있는 상황. 다만 이 구간만 과표를 현실화하면 일부 고소득층에게만 감세혜택이 돌아간다는 논란을 살 수 있다. 정부로서는 선뜻 수용하기가 쉽지 않은 셈이다.
따라서 정부로서는 용역 초안을 기초로 국회와 여론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절충안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학계 일각에서는 정부가 과표를 전반적으로 상향 조정하되 38%의 최고 세율구간(3억원 초과 구간)과 같은 일부 고소득 과표구간에 대해서만 하한선을 내리는 방안(사실상 고소득자 증세)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렇게 하면 대부분 납세자에게는 감세를 하는 정부안을 관철시키면서 최고 구간 소득계층에게는 증세를 해 야권의 표심도 돌릴 수 있다는 것. 민주당은 '3억원 초과 구간'의 하한선을 '1억5,000만원' 선으로 내리자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현재도 소득세의 80%이상을 고소득계층이 부담하고 있는 상황에서 고소득층에만 감세를 하면 근로의욕 저하, 조세저항에 따른 탈세유인이 발생할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정부도 현재까지는 부자증세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딜레마에도 불구하고 과표 현실화는 반드시 이뤄야 하는 숙제다. 현행 과표체계의 모태가 처음 적용된 1997년 이후 지난해까지 소비자물가지수는 57.68% 올랐음에도 현행 과표구간의 상ㆍ하한선은 초창기와 비교할 때 그리 달라진 것이 없는 수준이다.
이렇게 과표가 오랜 기간 답보상태가 되면 납세자는 억울하게 세부담을 더 내게 된다. 납세자의 실질소득은 제자리임에도 명목소득이 물가상승 영향으로 올라 더 높은 과표구간(더 높은 세율 적용)에 속하게 되는 탓이다. 학계의 한 관계자는 "연간 경제성장률이 7~8%에 되던 과거에는 굳이 소득세율을 올리지 않더라도 단순히 과표 구간을 그대로 방치만 해도 소득세수가 연 10%대씩 증가했다"며 "역대 정부와 국회는 이런 부작용을 알면서도 과표 현실화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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