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내년부터 3년간 통화정책 방향을 좌우할 '중기 물가안정 목표제'의 상하 진폭(밴드)을 ±0.5%포인트에서 2배 확대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현재(2013~2015년) 3%를 기준으로 2.5~3.5%인 것을 ±1%포인트로 넓힌다는 것이다. 한은은 우리 물가상승률 추세가 2000년대 3%에서 최근 2% 내외로 낮아졌다고 보고 있어 2016~2018년 물가목표제는 2%를 기준으로 1~3%가 될 가능성이 높다.
21일 한은 사정에 정통한 금융시장 관계자는 "한은이 차기 물가목표 밴드를 ±0.5%포인트에서 ±1%포인트로 2배 확대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의 한 관계자도 "한은이 밴드를 ±1%포인트로 확대하려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중기 물가안정 목표제는 한은이 3년 단위로 제시하는 우리 경제의 적정 물가 수준이다. 실제 물가가 이를 장기간 벗어나면 한은은 기준금리 변경을 통해 조절한다. 소비자물가가 한은 목표치를 웃돌면 금리를 올리고 목표치 하단에서 맴돌면 금리를 인하하는 방식이다. 한은은 정책 목표 1순위가 물가안정이다. 현재 2.5~3.5%인 물가목표제는 올해 말 끝나기 때문에 기획재정부와 협의를 통해 오는 10월께 차기 목표치를 발표한다.
한은이 물가목표 밴드를 확대하려는 것은 국제유가 급등락으로 물가 상승률이 요동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물가상승률 추이는 그야말로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지난해 2월 1%(전년 대비)였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불과 3개월(5월) 만에 1.7%까지 치솟았다. 이후 빠르게 미끄러지기 시작해 올 3월에는 -0.2%(담뱃값 인상분 0.6%포인트 포함)까지 떨어졌다. 1년 사이에 총 2%포인트를 오르내릴 정도로 변동성이 높다. 한은은 국제유가, 농산물 가격, 환율 급등락과 국제금융시장 불안 등으로 국내 물가 변동성이 커졌기 때문에 지금처럼 0.5%포인트로 설정한 밴드는 좁은 감이 있다고 보고 있다.
또 주요국 중 밴드가 ±0.5%포인트에 불과한 나라는 우리와 호주밖에 없는 것도 배경이다. 영국중앙은행(BOE)은 물가안정목표치 2%를 기준으로 물가가 ±1%포인트를 벗어나면 총리에게 그 배경을 공개서한 형식으로 보낸다. 물가안정목표제를 세계 최초로 실시한 뉴질랜드중앙은행도 1~3%를 제시하고 있다.
물가 밴드 확대가 정부 협의를 거쳐 확정되면 한은 입장에서는 물가안정 목표를 수월하게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과녁' 자체가 2.5~3.5%에서 1~3%로 2배나 넓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금리 조정에 대한 외부의 압박도 누그러질 수 있다. 한은은 현 물가목표를 단 1차례도 달성하지 못해 금리를 낮춰 물가를 끌어올리라는 전방위 압박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 조정이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 '물가 노이로제'에 빠진 한은이 스스로 목표를 헐겁게 잡는 '꼼수'를 부린다는 눈총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고물가를 억제하는 것뿐만 아니라 변동성도 최소화해 국민 경제에 이바지하는 것이 한은 존립 근거인데 목표치를 너무 폭넓게 잡았다는 얘기다.
한은은 1998년부터 물가안정 목표제를 운영해왔다. 도입 초기에는 1년 단위로 목표제를 실시했으나 통화정책 파급 시차가 6개월 이상 걸린다는 점을 감안해 한은법을 개정해 2004년부터 3년 단위의 '중기 물가안정 목표제'를 시행했다. /이태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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