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과열양상을 보이던 회사채시장이 최근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불과 4개월 전에 롯데쇼핑이 3년 만기 회사채를 연 2.98%의 금리로 발행하며 '마(魔)의 3%' 벽을 깨기도 했지만 이후 상황은 180도로 돌변했다. 잘나가던 회사채시장이 냉각된 결정적 계기는 웅진홀딩스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신청이다. 웅진의 법정관리 신청 이후 건설과 중공업 등 업황이 좋지 못한 업종을 중심으로 기관들의 리스크 회피심리가 커지면서 회사채 발행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여기에다 회사채의 절대금리가 낮아 투자자들의 눈높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점도 회사채 발행부진의 한 이유가 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여파가 초우량 기업들에까지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곳이 SK에너지다. 'AA+' 등급의 SK에너지는 최근 회사채 3년물 2,000억원과 5년물 1,000억원, 7년물 1,000억원, 10년물 1,000억원을 각각 발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기관을 상대로 한 수요예측에서 3년물만 소화됐을 뿐 7년물과 10년물은 각각 600억원씩 미매각이 발생했다. 결국 SK에너지는 장기물 발행을 전면 취소했다.
GS칼텍스(AA+)와 오리온(AA-), 한국남동발전(AAA) 등의 회사채도 기관 수요예측에서 잇달아 미달이 발생했다. 삼성물산(AA), LG이노텍(A+) 등 주요그룹 계열사의 회사채도 적잖은 물량이 팔리지 않을 정도로 기관 수요가 얼어붙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달 수요예측을 실시한 회사채 물량 4조9,250억원 가운데 2조1,270억원이 미매각되면서 매각 주관사인 증권사들이 이를 떠안게 됐다.
박성원 KB투자증권 기업금융본부 부본부장은 "웅진 사태 이후 기관들을 중심으로 회사채 리스크에 대한 경계심이 커졌다"며 "넉넉한 보유자금에도 불구하고 기관투자가들이 회사채 투자를 망설이는 것은 리스크에 비해 금리가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기관 수요가 위축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당분간 회사채 금리가 올라가면서 시장의 눈높이를 맞추는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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