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당국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진정되고 최고 7%대의 고성장을 구가하는 동안에도 기준금리를 2% 초반으로 묶어왔다. 지난 7월 0.25%포인트를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올렸지만 지금과 같은 장기간 초저금리는 유례가 없었다. 더욱이 당국이 금리를 올리겠다고 엄포를 놓아도 외국인이 밀려오면서 채권금리는 연일 떨어지고 예금금리까지 동반 낙하하는 등 시장은 도통 말을 듣지 않았다. 이 동안 물가는 고공 비행하면서 돈을 맡겨도 물가 상승분을 빼면 오히려 손해가 나는, 이른바 '마이너스 금리시대'가 도래하고 말았다. 비정상적인 시장에서 맞이했기 때문일까. 지금의 마이너스 금리는 경제 전반에 다양한 독(毒)을 품고 있다. 얄팍한 자금시장에서는 벌써 '버블형 머니 무브' 현상이 현재화하고 있다. 실물경기는 하락 곡선을 그림에도 한계 기업은 저금리라는 이슬을 먹으면서 연명을 하는 모습까지 엿보인다. 비틀어진 통화정책이 경기 전반의 왜곡으로 이어질 조짐을 보이는 것이다. ◇마이너스 금리… 빚의 불감증=한국은행의 한 관계자는 "저금리 장기화 속에서 가장 문제는 경제 주체들이 빚을 많이 지려고 하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런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은행의 수신 잔액이 8월 중 3조5,000억원, 9월 3조3,000억원 줄어든 반면에 빚으로 주식에 투자하는 신용거래 융자는 14일 현재 5조3,225억원으로 연초보다 9,330억원이나 늘었다. 주춤하던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도 9월 한달 2조7,000억원 증가했다. 금리가 낮은 것을 이용해 빚을 내 한 방을 노리는 투기의 움직임이 모습을 비추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마이너스 금리의 장기화는 실물 부분의 자산 버블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금이나 부동산 등 실물 투기가 늘어난다는 얘기다. 국제적인 흐름 때문이기는 하지만 금값은 이미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부동산은 아직은 침체라는 말이 더 어울리지만 전셋값 폭등 현상 등을 보면 마냥 안심할 수는 없는 형편이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부동자금이 650조원에 이르는 상황에서 증시가 포화 상태에 이르면 부동산으로 돈이 몰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오르막 이어가는 인플레이션 곡선=마이너스 금리가 잉태하는 치명적인 독은 바로 인플레이션이다. 통화당국은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와 환율 전쟁에 손발이 묶여 있다. 연내 기준금리 인상이 불가능할 것이란 관측까지 나온다. 이런 동안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9월 3.6%를 찍은 데 이어 내년 초까지도 오름 곡선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한은의 인플레이션 목표치가 3%에서 1%포인트의 편차를 두고 있다지만 이런 고공 행진은 익숙하지 못한 모습이다. 민간연구소의 한 선임연구위원은 "물가의 높은 수준 자체도 그렇지만 당국이 오름 곡선을 바꿀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명하는 기업들… 한계 기업 과잉투자 재발하나=마이너스 금리는 문제가 있는 기업에는 단비다. 정부는 G20 회의 등에 치중하느라 구조조정의 고삐를 사실상 풀어놓고 있다. 구조조정을 하려 해도 금리가 낮아 기업들이 연명할 힘이 생기니 강제로 이들을 퇴출시킬 수도 없다. 더욱이 큰 문제는 구조조정 손길에서 빠져 나온 기업들이 과잉 투자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 고성장 시절 우리 기업들이 그랬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경기의 호전에 대한 확신이 없어 징후가 없었지만 마이너스 금리 장기화는 한계 기업의 과잉투자를 유발하기 마련"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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