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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 모기는 머리 속에 있는 두 개의 근육 펌프로 순식간에 자기 몸무게의 3~4배나 되는 피를 빨아들인다. 사람들이 아무리 경계해도 방심하는 찰나를 이용해 모기가 피를 빨 수 있는 이유다. 또 나비는 말려 있는 가늘고 긴 침과 침 끝에 난 수많은 털 감각기로 액체를 한 방울도 남김없이 빨아들인다. 생명체의 이 놀라운 기능을 인간이 가질 수 있다면 이를 적용할 만한 분야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5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만난 이상준(58) 포항공과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생물체의 생명 활동 메커니즘을 분석하고 모방해 이를 공학적으로 연구하는 과학자다. 이 교수는 생물학 분야를 기계공학에 적용한 10건의 특허를 등록하고 다양한 응용의 길을 열었다. 모기를 생체 모사한 미세 펌프, 나비 침의 특수 구조를 모방한 빨대, 식물 잎의 기공에서 일어나는 작용을 모방한 초소형 펌프 등이 대표적이다. 그는 이 공로로 미래창조과학부가 주최하고 한국연구재단·서울경제신문이 주관하는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8월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 교수는 첨단 생체유동 가시화 기법을 이용해 살아 있는 모기·나비 등 곤충의 액체 흡입과정과 펌프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관찰했다. 암컷 모기의 펌핑 메커니즘을 세계 최초로 해석한 그는 생체모방 펌프를 설계·제작했다. 이 교수가 고안한 실험·해석기법은 말라리아처럼 모기를 매개로 하는 질병을 연구하는 데 유용하게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또 곤충의 액체 흡입과정을 생체 모사한 초소형 유체기기를 상용화해 혈액을 공급하는 바이오칩에 적용하면 기술·경제적인 파급효과도 매우 클 것으로 기대된다. 이 교수는 "모기의 침을 모방한 기술을 한방에서 쓰려고 준비 중에 있다"며 "나비의 대롱은 바닥에 쏟은 비싼 액체를 남김없이 수집하는 데 쓸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 교수 연구의 손길이 닿은 곳은 곤충뿐이 아니다. 이 교수는 지구상에서 동물보다 등장 시점이 훨씬 빨라 월등한 생존력을 자랑하는 식물에 먼저 관심을 쏟았다. 식물의 생명유지 관련 시스템을 파악하고 이를 공학적으로 응용하는 길을 찾는 '식물생리학'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식물생리학은 이 교수의 아이디어로 출발해 지금은 세계적 학문이 됐다.
이 교수는 금 나노입자와 포항에 있는 가속기의 고해상도 X선 영상기법을 이용해 세계 최초로 식물의 물관 내부 수액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관찰했다. 주요 곡물인 벼·밀·수수·옥수수의 물관 내부 구조와 수액 흐름의 유체역학적 특성 간 상관관계를 밝혔다. 그동안 대부분의 연구는 냉동 상태이거나 죽어 있는 생물체를 대상으로 했다. 반면 이 교수는 처음으로 살아 있는 상태에서 직접 생명 활동을 관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교수의 연구는 가뭄 등 척박한 환경에서도 수확이 가능한 곡물을 개발하는 데 주요하게 사용될 수 있다. 또 연료전지에서 산소·수소 결합 뒤 부산물로 나오는 물을 제어하는 데도 적용이 가능하다. 이 교수는 "식물은 생명체 가운데 키와 덩치가 가장 크고 수명이 수천년에 달할 정도로 생명유지 기능이 뛰어난 생명체"라고 평가한 후 "가지나 잎 따위가 부러져도 생명에 아무 지장이 없을 정도로 비밀이 많아 연구 가치가 높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현재 생쥐·물고기 등 생명체를 활용한 혈액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기계부터 의학까지, 식물에서 동물까지 인간 생활에 응용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 손을 대는 셈이다.
"젊은 과학도 20년 내다보고 미지의 분야 뛰어들라" 윤경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