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2월 강원랜드 경영진과 사외이사 등 현직임원을 해임하고 손해배상 청구를 요구할 때만 해도 언론들은 '거수기' 사외이사의 배임 혐의에 대한 사상 첫 책임 추궁을 환영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숨죽인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관료집단이다. 강원랜드 이사진에는 지식경제부 석탄산업과장, 문화체육관광부 관광산업팀장, 정선군 기획감사실장 등 관련 핵심부처 실무담당자 3인방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이들은 이날 이사회에 일제히 불참, 책임 문제를 교묘히 피해갔다. 회의에서 기권한 2명도 징계를 받은 것과 비교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조치였다.
경제개혁연대 관계자는 "불출석 이사 3인은 모두 중앙정부 및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으로 산하 공공기관인 강원랜드에 대해 누구보다 감시ㆍ감독의무가 크다"며 "특히 이사회에 참석했다가 표결 직전 퇴장한 산업부 석탄산업과장에 대해 감사원과 산업부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은 '제 식구 감싸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관료는 행정권력이라는 독점적이면서도 막강한 파워를 부여 받는다. 그들의 정책결정에 따라 수백·수천억원대의 예산이 움직이고 국민과 기업은 그들이 만든 규제에 줄을 맞춰 선다. 하지만 이처럼 강력한 권한에 비해 이들에게 책임을 묻는 시스템은 취약하기 짝이 없다. 뇌물을 받는 등 명백한 잘못이 아니라면 어떤 의무를 소홀히 했고 이것이 어떻게 국민에게 손해를 끼쳤는지 책임을 지우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오히려 관련 법을 꿰뚫고 있는 관료집단은 법을 역이용하거나 면피할 퇴로를 미리 열어두기까지 한다.
이번 세월호 참사 같은 경우도 관련 공무원을 형법적으로 처벌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공무원이 행동한 시점에 재난을 예측할 수 있는지를 입증하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형을 선고 받더라도 항소하면 실형을 피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실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의 경우 기소된 공무원 12명 중 뇌물을 수수한 2명에게만 실형이 선고됐다.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 사고는 아예 공무원이 기소 대상에도 안 올랐다.
대형사고는 물론 4대강 사업, 저축은행 사태 등 관료들의 정책결정이 결정적 영향을 미친 사안도 민사상 책임을 관료들에게 묻기는 쉽지 않다. 2월 법원은 부산저축은행 후순위채 투자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저축은행에는 배상책임을 물었지만 금융감독원 등 감독당국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기각했다. 혈세 22조원을 쏟아부은 4대강 사업은 지난해 9월 총리실 산하에 4대강 사업 조사평가위원회가 구성됐지만 진행은 더디기만 하다.
익명을 요구한 사립대학 행정학과의 한 명예교수는 "새로 생기는 법의 50% 이상이 공무원들에 의해 생기는데 공무원이 자신들을 처벌하는 법을 만들겠는가"라며 "법관들은 법조문에 공무원 처벌규정이 불명확하니까 처벌을 할 수 없고 결국 공무원은 솜방망이 처벌만 받고 풀려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정책결정에 대한 사후 책임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문제가 터지기 전에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검사시스템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강구욱 한국외대 법학과 교수는 "공무원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해임이므로 이와 관련된 징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무원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김홍석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성수대교 붕괴 때도 서울시 안전관리관 10명을 기소하고 안전시스템·제도개선은 손 놨다가 결국 10명은 다 풀려나고 시스템은 개선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소를 잃었으면 도둑 처벌 수위도 높이고 외양간 수리도 같이 이뤄져야 한다"며 "공무원 처벌 수위를 높이는 동시에 안전관리 시스템을 투명하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