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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MB) 정부가 출범한 지 3개월이 지난 2008년 5월, 청와대는 공공기관 경영진에게 '일괄사표'를 받았다. 평가 뒤 재신임을 묻겠다는 취지였다. 강만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현 산은금융지주 회장)도 2008년 7월 국회에서 "공공기관장 일괄사표는 정치적 재신임 차원"이라면서 "업무성과, 전문성, 경영자로서의 역량 등을 참작해 유임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절차를 거치면서 기관장 상당수가 옷을 벗었다. 민주당은 2008년 국정감사에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공기업(24곳), 기금관리형(14곳), 위탁집행형(63곳), 기타 공공기관(202곳) 등 303개에 달하는 공기업·공공기관의 기관장 가운데 32%가 일괄사표 강요로 임기 중 교체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 정부는 공공기관장의 거취에 대해 좀처럼 명확한 입장을 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유임 신호'라고 해석하는 시각도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11일 낙하산 공공기관장의 교체를 사실상 천명하고 나섰다. 박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산하 공공기관장의 인사는 새 정부의 국정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명박 정부의 최대 실패작이 인사 정책이었고 '인사 대못'을 뽑지 않고는 새로운 국정철학을 심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낙하산 논란 컸던 곳부터 교체=박 대통령이 사실상 '인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함에 따라 공공기관장 상당수가 교체 대상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박 대통령은 당선 직후 "최근 공기업ㆍ공공기관 등에 전문성이 없는 인사들을 낙하산으로 선임해서 보낸다는 얘기가 많이 들리고 있는데 국민께도 큰 부담이 되는 것이고 다음 정부에도 부담이 되는 일이며 잘못된 일"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1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정과제 토론회에서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낙하산 인사는 새 정부에서 없어져야 한다"며 "낙하산 인사라든가 근본적인 원인이 제거될 수 있도록 아예 시스템을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평가를 통해 전문성 결여는 물론 경영성과가 떨어지는 공공기관장들은 임기와 상관없이 교체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를 거쳐 공공기관 기관장이나 고위임원으로 재취업한 인사는 최소 44명, 정부 부처에서 산하 기관 고위직으로 옮긴 인사는 지난 한해 동안에만 250명에 달한다. 특히 청와대 출신 40명은 이명박 정부가 집권 후반기에 들어선 지난해 이후 임기를 시작했다. 결국 이들부터 교체 대상이 되지 않겠느냐는 게 관료들의 판단이다. 여기에 임기가 줄줄이 도래하는 고위직 인사들까지 포함하면 적어도 500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지주 회장 등 금융계 수장 교체 여부 촉각=정부 안팎에서는 요즘 박근혜 정부가 금융지주 회장에 대한 평가는 모두 끝마쳤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심지어 "○○ 회장은 충분히 컨트롤 가능해 괜찮은 평가를 받았다"거나 "△△ 회장이 교체의 첫 타깃이 될 것으로 보인다" 등의 말이 떠돌 정도다.
그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의 발언이 전해지자 금융계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공공기관의 수장은 물론 정부의 지분이 많거나 영향력이 큰 금융지주 역시 교체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명박 정부 때도 우리금융지주는 물론 정부 지분이 없는 KB금융지주도 숱한 논란을 거치면서 교체 절차를 밟았다. 금융지주 회장 가운데 어윤대 KB금융 회장은 올해 7월에 임기가 끝나고 강만수 KDB금융 회장과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은 임기가 1년 이상 남아 있다. 하지만 이들 세 금융지주 회장은 대표적인 금융계의 'MB맨'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임기를 마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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