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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달 동안의 기름값 할인 조치가 끝나는 다음달 6일을 앞두고 정유사들이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기름값 할인 조치로 이미 수천억원대의 손실을 본 상황에서 정부가 단계적 가격 인상을 주문하고 있어서다. 이에 따라 기름값 인상의 충격을 최소화하려는 정부와 더 이상의 손실을 떠안을 수 없다는 정유사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식경제부는 기름값 할인이 끝난 뒤에도 정유사들이 석유제품 가격을 단계적으로 올릴 것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관 지식경제부 제2차관은 지난 17일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다음달 석유제품 가격을 한꺼번에 올리는 게 아니고 점차적으로 충격을 줄이면서 올리도록 정유사에 요청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지경부의 한 관계자도 “지난 4월 기름값 인하 조치가 시작된 후 주유소의 판매가격이 곧바로 리터당 100원씩 내려가지 않은 만큼 가격을 올릴 때도 시차를 두고 올리는 것이 바람직한게 아니냐”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유사들은 정부의 눈치를 보며 다음달 가격 환원 방식을 놓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정부의 단계적 인상 압박과 소비자들의 따가운 시선을 고려할 때 다음달 7일부터 기름값을 리터당 100원씩 인상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주유소 공급가격 인하 대신 카드할인 방식을 택해 조치 직후부터 리터당 100원 인하 혜택을 소비자에게 곧바로 제공한 SK에너지는 이 같은 고민에서 한발 벗어나 있는 분위기다. SK에너지는 기름값 인하 조치의 출구전략도 감안해서 카드할인 방식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유업계의 한 관계자는 “다음달 7일 이후 기름값을 어떻게 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며 “정부와 소비자 등 눈치를 봐야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고 토로했다. 특히 그동안의 기름값 인하로 당장 올 2ㆍ4분기 실적을 걱정해야 하는 정유업계로서는 기름값을 일부만 올리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정유업계가 기름값을 리터당 100원씩 내린 3개월 동안 7,000억~8,000억원 가량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대부분의 정유사들이 2ㆍ4분기 석유사업에서 적자를 간신히 면할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기름값을 단계적으로 환원해 기업가치가 하락할 경우 국내외 투자자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또 정유사의 공급가격 인하분만큼 주유소 판매가격이 내려가지 않은 것은 주유소 업주들의 책임도 있는데 이를 고스란히 정유사에게 떠넘기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결국 다음달 가격 인하 종료로 기름값 급등이 우려되는 시점에서 정부가 유류세 인하를 통해 기름값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유사들이 손실을 감수하며 기름값을 한시적으로 인하했듯 정부도 유류세를 인하해 고통 분담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주유소 휘발유 판매가격에서 유류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47%에 달한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기름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유류세 인하라는 정책수단은 배제한채 정유사의 팔만 계속 비틀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 “정유사들이 3개월 간 고통분담 차원에서 가격을 내렸으니 이제 정부가 화답할 차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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