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국내 10위의 토종 소모성자재 구매대행(MRO) 기업인 큐브릿지가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1997년 모나미 그룹 계열사로 출범해 온라인 사무용품 유통채널인 '오피스플러스'를 기반으로 매출 1,000억원대 규모까지 성장한 큐브릿지 매각에 대해 일각에서는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2011년11월 동반성장위원회가 MRO가이드라인을 만든 취지 자체가 중소 유통기업의 파이를 키워주자는 것이었는데 되려 대기업도 아닌 모나미가 MRO 사업을 지속하기 어렵다고 판단, 큐브릿지를 팔기로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큐브릿지의 경영난은 가볍지 않았다. 2011년 1,252억원 규모였던 매출(별도기준)은 2012년 1,110억원으로 줄었다. 2013년에는 1,290억원으로 예년 수준을 회복하는데 그쳤다. 대기업이 시장에서 철수하면 중소 유통상으로 파이가 돌아갈 것이라는 예측 자체가 빗나간 것이다.
이처럼 MRO 시장에서 대기업의 영업활동을 규제했는데도 중소기업들로 파이가 돌아가지 않은 이유로 업계에서는 대기업 계열사 지위를 벗어나 시장 독식에 나설 수 있었던 아이마켓코리아와 2011년 이후 비어있는 시장을 노리고 속속 진출한 외국계 MRO 기업들의 시장 잠식을 꼽고 있다. 당시 동반위는 가이드라인을 통해 대기업 MRO 9곳의 신규 사업을 제한했다. 대기업과 중소유통기업의 상호 동반성장을 위한다는 명분이었다.
가이드라인 발표 전후로 삼성그룹은 아이마켓코리아를 중견기업 인터파크에 매각했고 SK는 사회적기업으로 전환했다. 또 한화, 웅진 등은 아예 사업을 접었다.
삼성 품을 떠난 아이마켓코리아는 3년만에 70%에 육박하는 외형 성장을 달성했다. 인터파크에 인수되던 당시에도 1조6,000억원 규모의 대기업이었던 아이마켓코리아는 중소기업 시장으로 확대하며 지난해에는 2조7,000억원대 규모로 몸집을 불렸다. 특히 지난해에는 의약품 MRO인 안연케어를 인수했다. 지난달에는 약 15만개 기업고객사를 확보하고 있는 큐브릿지 인수전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며 외형 확대에 속력을 내고 있다.
아이마켓코리아의 사례는 시장을 왜곡한 날림 규제 탓에 규제 대상이 아닌 다른 대기업이나 외국기업들이 MRO시장에서 영토를 더욱 확장하는 악순환이 심화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미 아이마켓에 이어 대기업 품을 떠나 규제를 피한 제2의 아이마켓도 등장했다. 지난 16일 중견기업인 광동제약이 인수해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 시장 공략이 가능해진 MRO업계 4위 KeP가 바로 그 장본인이다.
현재 시장에 잔류하고 있는 대기업 MRO 역시 잠재 매물로 꼽힌다. 업계에서는 이들 대기업 계열 MRO를 외국계 MRO가 인수하며 국내 유통망을 장악할 것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3년전 만들어 놓은 날림규제를 고집하는 탓에 가이드라인에 걸리면 회사를 팔아버리면 그만이고 매각된 회사가 사세를 확장하면 동반위는 다시 뒷북 규제를 만들어 내는 웃지 못할 상황이 계속해서 연출될 것"이라며 중소기업에 도움이 안될 뿐만 아니라 시장을 왜곡하는 MRO가이드라인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관련, 동반위는 24일 대기업 계열사 이외에 매출 상위 3개사를 가이드라인 적용 대상에 포함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안건에 붙인다는 방침이다. 이 경우 2위 사업자인 아이마켓코리아도 영업 제한 대상에 포함된다. 하지만 이 역시 땜질식 처방에 그칠 것이라는 게 업계 전망이다. 큐브릿지나 KeP처럼 고객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있지만 그간 가이드라인 적용으로 영업활동이 불가능했던 기업 중 주인만 바꿔 언제든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MRO(소모성자재 구매대행) 가이드라인=상호출자제한기업 중 내부거래 비중을 30%를 기준으로 이를 초과하는 MRO사는 계열사 외에 매출 규모 3000억원 이상인 기업만, 미만인 경우 매출 1500억원 이상 기업만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한 자율규제. 지난 2011년 11월 동반성장위원회가 대기업과 중소유통기업과의 동반성장을 촉진하고, 중소유통상인의 생존권을 확보한다며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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