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위상이 시간순으로 배열된 거대한 검은 화면이 벽에 붙었다. 일본 작가 유스케 타니나카가 6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가 국제 예술인들을 위해 개관한 서울 평창동 예술창작실에 머물며 작업한 결과다. 작가는 마치 시간을 되돌리는 듯한 재생성을 가진 유도만능줄기세포(iPS) 기술에 영감을 받아 시간과 치유를 함께 사유하는 다이어그램적 드로잉을 선보였다. 현재 진행형인 프로젝트는 완성된 그림이기보다 작가와 함께 계속 성장 중이다. 경동시장에서 수집한 약재를 드로잉과 작품에 직접 반영하며 서울에서의 경험도 녹여냈다.
언뜻 지도 같은 또는 호랑이의 거죽 무늬 같은 이미지 위에 붉은 피 한 방울이 뚝 떨어진 듯한 5점의 회화가 나란히 자리했다. 베트남 작가 부이 트람 바오가 한국 체류 기간 마주친 까치를 떠올리며 제작한 작품이다. 랍은 ‘호작도’ 속 호랑이와 까치 중 호랑이는 떠나고 까치만 남은 서울의 도심을 생각하다 까치가 호랑이의 무덤 위치를 기록하는 상상의 지도 연작을 완성했다고 한다.
아르코 예술창작실을 거쳐간 입주 작가 10인의 작업을 소개하는 전시 ‘인 시투(In Situ)’가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아르코는 예술가들의 창작 교류를 위해 국내외 미술계를 대상으로 공모를 진행해 10명의 작가를 선정했다. 이들은 6~9월과 10~12월 각각 5명씩 1·2기 입주 작가로 활동하는 중이다.
전시 제목 ‘인 시투’는 ‘본래의 자리에서’라는 뜻의 라틴어다. 올해 개관한 레지던시의 장소성에 초점을 맞춘 셈이다. 전시를 기획한 신보슬 예술창작실 프로그램 디렉터는 “예술가에게 장소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사유와 행위가 교차하는 현장”이라며 “이번 전시는 예술가들이 머물렀던 창작의 공간(평창동)과 전시가 펼쳐지는 대학로 아르코미술관, 그리고 예술가 각자가 나고 자란 고유의 장소를 잇는 시도”라고 말했다.
실제 미술관 1·2층 전관에 펼쳐진 작가 10인의 작품 속에는 다양한 장소성이 연결되고 겹쳐져 뜯어보는 재미가 있다. 윤향로 작가는 작업실과 집을 오가며 관찰한 물길과 빛의 일렁임을 대형 캔버스에 담아 냈다. 폴란드 사진작가 카타즈나 마수르는 사회주의 시기의 자국 가족 사진과 군사 독재 아래 있던 한국의 역사적 이미지를 병치해 개인의 기억과 국가적 서사가 교차하는 지점을 탐색한다. 모잠비크 작가 우고 멘데스 역시 한국과 모잠비크가 공유하는 식민지에 대한 공통의 기억을 각국의 영적 도상으로 표현한 대형 프린트 설치작을 소개했다. 이한신 아르코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는 예술창작실이 국내외 예술가들의 창작과 교류를 지원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하는 것을 확인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1월 1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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