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구글이 자체 인공지능(AI) 칩인 텐서처리장치(TPU)로 학습한 ‘제미나이 3.0’을 앞세워 업계를 뒤흔들면서 그래픽처리장치(GPU) 최강자인 엔비디아가 수세에 몰리고 있다. AI 반도체 시장에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하자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나섰다. 미국 뉴욕 월가에서도 구글이 제시한 AI 산업 모델의 새 방향을 기대와 혼란 속에서 지켜보기 시작했다. 한국 시장 일각에서는 이를 오픈AI·엔비디아·SK하이닉스(000660)와 구글·브로드컴·TSMC·삼성전자(005930) 등으로 나뉜 경쟁 구도로 단순히 바라보는 시각도 있는 듯한 분위기다. 현 AI 산업의 역학 관계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AI 모델 시장에서는 구글·오픈AI·메타·앤스로픽·xAI 등이, 플랫폼·클라우드 시장에서는 구글·마이크로소프트(MS)·애플·오라클·아마존 등이, 반도체 시장에서는 구글·엔비디아·브로드컴·TSMC·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AMD 등이 합종연횡하면서 매우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관계로 보는 것이 맞다. 지금의 ‘군웅할거’ 기간을 지나면 AI 모델과 소비자 기기 플랫폼, 기업 클라우드 플랫폼, 반도체 설계(팹리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메모리 반도체 부문 등에서 시장을 평정할 소수의 기업만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기에 위험 관리 차원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보험을 든 상황이다. 특히 한국이 가장 큰 강점을 갖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제품의 경우 TPU든, GPU든, 또 다른 칩이든 AI 시장에서 어떤 반도체가 패권을 쥐든 간에 필수품이 될 수밖에 없다. 엔비디아의 독과점 구조보다 다극화된 경쟁 체제가 글로벌 AI 산업계에서 한국 기업의 몸값을 올리기에 더 유리하다는 뜻이다. 더욱이 기존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초호황 국면을 맞은 만큼 우리 기업들의 실탄 확보 여건도 그 어느 때보다 좋은 상태다.
TPU 수천 개와 슈퍼컴퓨터로 AI 초고속 연산에만 최적화…GPU 의존도 확 낮춰
지난 18일(현지 시간) 구글이 제미나이 3.0을 공개한 이후 월가는 ‘AI 거품론’을 재평가하는 데 가장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다. 제미나이 3.0의 성능이 기존 AI 거대언어모델(LLM) 최강자였던 오픈AI의 챗GPT의 아성을 위협하기에 충분한 까닭이다. 더욱이 월가가 충격을 받은 부분은 제미나이 3.0과 이미지 생성·편집 도구 나노 바나나 프로가 엔비디아의 최신 GPU의 도움을 받지 않고 구글의 자체 TPU로 개발됐다는 점이었다.
구글은 기존 중앙처리장치(CPU), GPU와 달리 TPU를 범용적인 작업은 수행하지 않고 오직 AI 연산만 초고속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또 그 TPU 칩을 초고속 통신망으로 수천 개 연결해 슈퍼컴퓨터로 하나의 거대한 기계처럼 작동하게 만들었다. 발상을 전환해 엔비디아 GPU를 대규모로 도입해야만 작동하는 줄 알았던 AI 모델의 학습 과정을 TPU와 슈퍼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 시스템 등을 엮는 식으로 바꿔 놓았다.
제미나이 3.0의 혁신에 페이스북의 모회사인 메타도 TPU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섰다. 구글이 아직까지 TPU를 외부에 판 적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엔비디아가 90% 이상 독점하던 GPU 시장에 일부 균열을 가할 여지가 생긴 셈이다. 구글 TPU의 성공 방정식은 다른 기업들의 맞춤형 반도체(ASIC) 개발 욕구도 강하게 자극했다. AI 모델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엔비디아의 GPU를 아예 안 쓸 수는 없겠지만, 지금처럼 100%에 가깝게 의존하지는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엔비디아의 독과점 구조가 깨지면 ‘블랙웰’ 등 값비싼 GPU 도입 비용도 크게 낮출 수 있다. 구글 제미나이 3.0의 성공이 월가의 AI 거품 우려를 상당 부분 불식시킨 이유다.
구글은 나아가 출시 첫날부터 제미나이 3.0을 자사 검색엔진 서비스에 곧바로 적용하는 초강수를 뒀다. 이용자들이 구글 검색창에 검색어를 입력한 뒤 ‘AI 모드’ 탭을 누르기만 하면 손쉽게 제미나이 3.0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AI 모델과 반도체, 소비자·기업 플랫폼을 수직 계열화한 기업다운 결정이었다. 자사 서비스와 제품을 들고 이리저리 영업을 뛰어야 하는 다른 정보기술(IT) 기업이나 제조사와는 입장이 다르다는 의미다. AI 외 서비스로 재무 건전성을 유지하기 쉽다는 점도 오픈AI나 엔비디아와도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TPU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지난 25일 뉴욕 증시에서는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만 1.53% 오르고 엔비디아는 2.59% 하락했다. 알파벳은 24일에도 6.31% 치솟았지만, 엔비디아는 25일 반대로 장중 한때 6% 이상까지 떨어졌다. 알파벳의 시가총액은 다른 거대기술기업(빅테크)들이 AI 거품론으로 부진할 때도 ‘나 홀로 강세’를 보인 덕분에 지난달 말 3조 3900억 달러에서 이날 3조 9000억 달러로 대폭 늘어났다. 이달 초 1조 6000억 달러 이상까지 벌어졌던 엔비디아(4조 3200억 달러)와의 시총 차이도 25일 기준으로 4200억 달러로 줄었다. 현재 뉴욕증시 시총 3위인 알파벳이 마지막으로 1위 자리에 있던 때는 2016년 2월 2일이다.
‘구글에 시총 추격 위기’ 엔비디아 “우리가 한 세대 앞선다”…마이클 버리에도 반박
엔비디아에 대한 월가의 시각 변화는 대형 헤지펀드들의 주식 처분에서도 나타났다. 지난 17일 로이터통신은 14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된 보고서를 토대로 상당수 헤지펀드가 엔비디아 주식을 정리했다고 보도했다. 피터 틸이 이끄는 헤지펀드인 틸매크로의 경우 엔비디아 주식 53만 7742주를 지난 분기에 전부 팔아치웠다. 틸은 페이팔·팰런티어 공동 창업자이자 미국 실리콘밸리 대표 벤처투자자로 유명한 인물이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도 같은 기간 엔비디아 주식 보유량을 기존의 3분의 1 수준인 250만 주로 줄였다. 코튜 매니지먼트도 엔비디아 보유 주식을 14.1% 줄여 990만 주로 낮췄다. 최근 은퇴를 선언한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회장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는 알파벳의 주식을 43억 달러어치 새로 매집했다.
시장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엔비디아는 위기론을 적극적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엔비디아는 25일 X(옛 트위터) 공식 계정에 글을 올리고 “구글은 AI 분야에서 큰 진전을 이뤘고 그들의 성공에 기쁘다”면서도 “우리는 계속 구글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글이 클라우드, 기계학습(머신러닝) 등 서비스를 가동하는 데 있어 여전히 자사 GPU를 필수로 사용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업계보다 한 세대 앞서 있다”며 “오직 우리 플랫폼만이 모든 AI 모델과 컴퓨팅을 구동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엔비디아 제품은 특정한 AI 구조나 기능을 위해 설계된 ASIC보다 뛰어난 성능과 다용성·호환성을 제공한다고 덧붙였다. ‘특정 AI 구조나 기능을 위해 설계된 ASIC’는 구글의 TPU를 겨냥한 발언이다.
26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최근 영화 ‘빅 쇼트’의 실제 인물로 유명한 헤지펀드 투자자 마이클 버리와 유료 뉴스레터 플랫폼 서브스택에 글을 올린 비판자들의 주장도 조목조목 반박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이 내용을 담은 메모를 지난주 월가 애널리스트들에게 뿌렸다. 엔비디아는 특히 이 메모에서 엔비디아에 재고가 쌓이고 있고 고객들이 대금을 치르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 한 필자의 글을 강하게 반박했다. 엔비디아는 자사 재무제표를 근거로 과거 회계 사기 사건과 비교하지 말라고 지적했다. 엔비디아는 최신 블랙웰 칩이 복잡성 때문에 이전 모델보다 총이익률이 낮고 보증 비용이 높다는 점만 인정했다.
엔비디아는 이 같은 해명에 힘입어 26일 뉴욕 증시에서 1.37% 반등하는 데 성공했다. AI 거품론 희석 효과가 전체 기술주로 확산한 덕을 봤다. 이날은 최근 급격히 상승한 알파벳이 1.08% 하락하면서 엔비디아와 시총 격차를 다시 벌렸다.
버리는 이에 앞서 24일 X에 글을 올리고 “옐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2005년 ‘집값에 거품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라고 말했고, 제롬 파월 현 의장은 ‘AI 기업들은 실제로 수익을 내고 있어 (2000년대 초반 ‘닷컴버블(인터넷 산업 거품)’ 때와는) 사정이 다르다’라고 밝혔다”며 현 AI 투자 열풍을 2006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에 비견했다. 버리는 이어 “내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의구심이 있었지만 나는 돌아왔다”며 유료 뉴스레터를 운영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버리는 이달 10일에도 시장 과열을 경고하며 자신이 운용하던 헤지펀드를 해체했다. 버리는 12일에도 X(옛 트위터)에 2027년 1월까지 팰런티어 주식을 주당 50달러에, 같은 해 12월까지 엔비디아 주식을 주당 110달러에 매도할 수 있는 풋옵션을 보유했다고도 알렸다.
삼성전자는 구글,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수혜주처럼 양극화…HBM 시장은 모두에 호재
시장 참여자들이 제미나이 3.0의 돌풍을 구글과 오픈AI·엔비디아 연합 간 경쟁으로 이해하는 사이 국내 증시에서도 그간 나란히 오르내리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덩달아 엇갈린 주가 흐름을 보였다. 삼성전자는 24일부터 나흘 연속 상승하며 단숨에 10만 원대 주가를 회복했지만, SK하이닉스는 24~25일 연속 하락했다. 구글이 강세를 보인 다음날인 25일에는 삼성전자가 3%대, SK하이닉스가 0%대 오름세를 보였지만 엔비디아가 상승한 다음날인 26일에는 거꾸로 SK하이닉스가 3%대, 삼성전자가 0%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SK하이닉스에는 엔비디아의 최대 HBM 공급사라는 현실이, 삼성전자에는 구글의 공급망 편입 기대주라는 전망이 각각 다르게 적용된 결과다. 구글은 현재 브로드컴과 협력해 TPU를 설계한다. 시장 참여자들은 TPU의 주문 생산량이 늘어날 경우 그 물량을 대만의 파운드리 기업인 TSMC뿐 아니라 삼성전자에도 나눠줄 것이라는 기대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세계 2위 파운드리 기업이라는 점에서 이는 SK하이닉스와 차별화되는 부분이 맞다.
다만 AI 칩 시장이 치열한 경쟁 구도로 돌입할수록 HBM 부문에서는 모든 기업이 수혜를 볼 수 있다는 점이 주가 흐름에 간과된 것으로 보인다. 현 TPU에는 6∼8개의 HBM이 탑재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TPU가 메타 등 다른 빅테크로도 판매될 경우 HBM 수요는 더 크게 늘어날 수 있다. 구글이 HBM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SK하이닉스를 배제하고 삼성전자나 마이크론에만 물량을 몰아줄 이유도 없다. 설령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를 통한 HBM 시장 지배력을 일부 잃더라도 구글이나 다른 빅테크를 통해 이를 충분히 상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 스위스계 투자은행(IB) UBS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구글, 브로드컴, 아마존웹서비스(AWS) 등 ASIC 고객을 대상으로도 HBM 공급에 있어 이미 우위를 점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구글의 최신 TPU 7세대에 HBM3E 8단을 우선 공급사로 납품하고 있고, 다음 세대(TPU 7e)에 들어가는 HBM3E 12단도 독점 공급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기존 메모리 반도체 시장 호황에 힘입어 AI 산업 변화를 견딜 힘이 생겼다는 점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는 호재다. 이들 기업이 HBM 등 고사양·고수익 메모리 반도체 생산에만 몰두한 탓에 일반 칩들은 현재 시장에서 품귀 현상을 겪고 있다. 14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32기가바이트(GB) DDR5 메모리 반도체 모듈 가격을 9월 149달러에서 11월 239달러로 약 60%나 인상했다. 16GB·128GB DDR5 가격도 각각 50%가량 올렸고, 64GB·96GB 제품가도 30% 이상 높였다.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는 삼성전자가 올 4분기에는 계약 가격을 3분기보다도 40~50% 더 높게 책정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시장조사 기관 차이나플래시마켓(CFM)과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올 3분기 D램 시장 점유율은 33~35% 사이에서 서로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이에 대해 27일 블룸버그통신은 델 테크놀로지스, HP 등 미국 기업들이 내년에 메모리 칩 공급 부족에 직면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심지어 중국계 레노버그룹, 대만 PC 업체 에이수스 등은 가격 상승에 대비해 메모리 반도체를 비축하기 시작했다. IT 시장조사 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도 이달 메모리 모듈 가격이 내년 2분기까지 50% 더 오를 것이라는 전망했다. 미국 IB 모건스탠리 역시 AI 산업 수요 덕에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상승하면서 시장이 한 동안 활황을 누릴 것으로 이달 예측했다.
‘틱톡에 칩 사용 제한’ 중국 수출도 단기에 쉽잖아…핵심은 ‘독과점 구조 붕괴’
구글이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하면서 현 180.26달러인 엔비디아의 주가가 지난달 29일 최고치인 207.04달러를 단기간에 회복하기는 쉽지 않게 됐다. 그나마 글로벌 거대 시장인 중국에 대한 수출 재개가 돌파구가 될 수는 있다. GPU 시장 독과점 구조 붕괴에 대한 우려를 매출처 확대로 극복하는 방식이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부산 미중 정상회담에서 엔비디아의 최첨단 칩인 블랙웰 수출 허용을 안건으로 다루겠다고 했다가 공화당 등 자국 내의 거센 반발을 이기지 못하고 포기한 바 있다. 그러면서 미국으로 복귀한 뒤 블랙웰 등 최첨단 반도체는 중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안 주겠다고 선언했다. 그 직전 황 CEO가 방한 과정에서 우리 정부와 삼성전자, SK그룹, 현대차(005380)그룹, 네이버(NAVER(035420))클라우드에 블랙웰 등 총 26만 장의 GPU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한 상황이라 이 발언은 한국에도 상당한 혼선을 줬다. 지금도 백악관은 중국을 미국산 칩에 중독시켜야 하는지, 안보 위협을 감안해 수출을 계속 금지해야 하는지를 두고 설왕설래만 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미중 무역 갈등 전에도 블랙웰이나 ‘H100’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H20’ 칩만 엔비디아에서 구매할 수 있었다. 미국이 이른바 ‘관세 휴전’ 과정에서 희토류 수출 재개에 대한 대응 차원으로 H20 수출 제한 조치를 해제했지만, 중국은 자존심을 지키겠다며 이를 수입하지 않고 자체 AI 칩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26일 미국 IT 전문매체 디인포메이션도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 당국이 자국 동영상 플랫폼 틱톡의 모회사인 바이트댄스에 엔비디아 반도체를 쓰지 말라고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신규 주문뿐 아니라 기존 재고 물량도 쓰지 말라고 했다는 보도였다. 엔비디아가 짧은 기간 내에 중국 시장을 돌파할 공산이 크지는 않음을 시사한 기사이기도 했다.
바이트댄스는 올해 중국 기업 가운데 엔비디아 칩을 가장 많이 구매한 회사다. 엔비디아 반도체를 쓰지 않으면 내수 기업인 화웨이나 캠브리콘 등이 제조한 칩을 써야 한다. 내년 11월 미국 중간선거까지 미뤄진 관세 휴전 기간 동안 AI 자립을 이뤄내겠다는 중국의 강력한 의지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중국이 AI 반도체 카드를 틀어 막는다면 내년 4월 트럼프 대통령 방중 기간 시진핑 국가주석이 협상력을 한층 더 올릴 수도 있다.
월가에서는 중국이 AI 굴기를 이루기 전까지 글로벌 시장에서 독주 가도를 달릴 줄 알았던 엔비디아가 예상보다 일찍 강적을 만났다고 평가하고 있다. 구글의 부상은 닷컴버블 때와 유사한 순환 거래 구조, GPU 감가 연한, 회사채 발행을 통한 과잉 투자 등 그간 엔비디아를 중심으로 형성된 AI 거품론을 일부 진화하는 효과도 냈다. 미래에 얼마나 가시적인 이익을 낼지는 여전히 누구도 모르지만, AI 산업이 적어도 자체 기술 혁신으로 투입 비용은 낮출 수 있다는 희망을 본 것이다.
황 CEO가 한 가지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면, 투자자들 역시 지금의 엔비디아가 기술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AI의 문외한도 엔비디아의 GPU 기술은 매우 뛰어나며, 이 회사가 여전히 돈을 잘 번다는 사실을 잘 안다. 구글이 엔비디아의 GPU를 계속 많이 살 것이라는 점도 모르지 않는다. 누가 최종 승자가 됐든, AI의 산업적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점도 잘 이해하고 있다.
문제는 주가다. 지금까지 엔비디아의 주가는 이 회사가 오랫동안 ‘AI 최고 사양 칩’ 시장을 독과점할 것이라는 기대에 힘입어 형성됐다. 우려의 핵심은 ‘주가 과대평가’이지, ‘기술과 이익 저하’가 아니다. 시장이 따지는 지점은 엔비디아의 미래 가치가 지난달 29일 5조 달러를 돌파하며 세계 3위 경제대국인 독일의 국내총생산(GDP)를 넘어설 정도가 맞는가 여부다. AI 반도체가 경쟁 국면에 들어설수록 한국의 메모리 칩 제조 기업들도 반사이익을 얻으려 할 것으로 보인다. TPU 도입의 확산, 구글의 향후 계약 관계 등은 AI 산업 전반에 걸친 변수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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