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한국동서발전 울산본부 회의실에서는 ‘중대재해 예방 전담조직(TF) 점검회의’가 열렸다. 안전 관리 점검과 교육 강화 방안이 논의됐다. 그런데 3일 후인 6일 오후 2시, 현장에선 63m 보일러 타워가 무너져내렸다. 회의실에서 안전을 논의하는 동안, 25m 높이에서는 하청 노동자들이 위험한 절단 작업을 하고 있었다.
작업자 9명은 모두 2차 하청업체인 코리아카코 소속이었다. 현재까지 3명이 사망했으며, 2명은 사망 추정, 나머지 2명은 실종 상태다. 2명만 구조됐다.
울산경찰청은 형사기동대, 과학수사계, 디지털포렌식계 경찰관 70여 명으로 구성된 전담팀을 편성했다. 울산지검도 사망자가 다수 발생한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사고 직후 전담팀을 꾸렸고, 부산고용노동청 역시 감독관 20명 정도로 전담팀을 구성했다.
9일 경찰 등에 따르면 수사는 보일러 타워 붕괴 원인과 과정을 규명하는 것을 기본으로, 원·하청 간 작업 지시 체계, 작업 공법, 안전 관리 체계 등을 들여다보게 될 전망이다.
실제 울산화력발전소 해체공사 기술시방서에는 발주처인 한국동서발전의 계약 상대 업체가 안전·환경·공정·화재 예방 등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도록 하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서발전이 HJ중공업에 이 해체공사를 발주했으며, HJ중공업은 이를 발파업체인 코리아카코에 하청을 줬다. 결국 실제 위험한 작업은 2차 하청업체가 떠안은 셈이다.
이번 사고는 전체 63m 높이 보일러 타워 중 25m 지점에서 사전 취약화 작업 즉, 대형 보일러 철거 시 한 번에 쉽게 무너질 수 있도록 기둥과 철골 구조물 등을 미리 잘라놓는 일을 하던 중 발생했다. 특히, 사고가 난 보일러 타워는 준공 후 40년가량 사용되는 동안 정비공사나 긴급공사 등이 반복되면서 최초 준공 도면과 현장 상황이 다를 수 있는 상태였다. 해체공사 업체 측이 작업 전 현장 조사를 철저히 했는지가 수사 대상으로 꼽힌다.
수사 과정에선 ‘위험의 외주화’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허종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21~2025년 7월) 발전공기업 6곳에서 발생한 산업재해 사상자 523명 중 85%인 443명은 하청업체 노동자였다. 사상자 중 하청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바로 동서발전으로 94%에 이르렀다. 이어 남부발전 89%, 한수원 85%, 중부·남동발전 82%, 서부발전 74% 순이었다.
앞서 지난 6월 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고(故) 김충현씨가 숨지는 사고 이후 정부는 현장 안전에 방점을 찍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당시 “모든 노동자가 안전한 대한민국은 구호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밝혔고, 산업통상부 김정관 장관은 에너지 공기업 사장들에게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중대 재해가 발생할 경우 가장 높은 수준의 페널티를 부여하겠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정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발전공기업 현장에서의 사망사고는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 동서발전은 지난 7월에도 동해화력발전소에서 30대 하청 노동자가 추락해 숨지는 사고가 있었는데 4개월여 만에 또다시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수사팀은 사고 나흘째인 9일 현재까지 매몰자 구조와 실종자 수색 작업이 이어지고 있어서 아직은 본격적인 수사에는 착수하지 못한 상태다. 수사는 사고가 난 5호기 양옆에 나란히 서 있는 4호기와 6호기를 해체하고 난 이후에 본격화한다. 중앙사고수습본부는 현장 안전과 실종자 구조 효율화 등을 위해 추가 붕괴 위험이 있는 4, 6호기를 조만간 해체할 계획이다.
경찰은 4, 6호기가 5호기와 똑같은 구조로 돼 있기 때문에 해체 전 사진과 영상 자료를 충분히 확보하는 중이다. 현장 감식은 다음 주 이후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 경찰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 등을 중점적으로 조사한다. 발주처와 공사 원·하청 등 사이에 체결된 공사 계약 내용 등에 따라 수사가 어느 선까지 미칠지 결정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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