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다 잘한다는 것은 제일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말과 똑같습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삼성전자(005930)를 향한 국내외 증권가의 평가는 냉담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에서는 대만 TSMC에 밀리고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는 SK하이닉스에 뒤처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여기에 중국 CXMT까지 D램 시장 진입을 본격화하면서 삼성전자는 “확실한 1등 사업이 없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올해 들어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인공지능(AI) 산업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D램·HBM·낸드·파운드리 등 반도체 공급망 곳곳에서 병목 현상이 발생했고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 사이에서 ‘구원 투수’로 부상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외국인은 6월 이후 삼성전자 주식을 13조 원 이상 순매수했고 주가는 불과 10개월 만에 두 배 가까이 뛰며 ‘10만 전자’ 시대를 열었다.
2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전 거래일 대비 3.24%(3200원) 오른 10만 2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외국인이 이날에만 7868억 원을 순매수했고 기관도 1643억 원을 사들이며 상승세를 이끌었다. 연초 5만 원대였던 주가는 10개월 만에 두 배 가까이 치솟았고 시가총액은 603조 8030억 원으로 국내 상장기업 최초로 600조 원을 넘어섰다. 연초 318조 7864억 원 대비 약 285조 원 증가한 규모다.
삼성전자 주가는 올해 세 차례의 굵직한 변곡점을 거치며 상승 흐름을 만들었다. 올 7월 테슬라와 165억 달러 규모의 차세대 AI 칩 공급계약을 체결하며 반등의 불씨를 당겼고 만성 적자였던 파운드리 사업에도 턴어라운드(실적 개선) 기대가 붙기 시작했다. 9월에는 낸드플래시 공급 부족 전망이 확산되면서 추가 상승이 시작됐고 불과 한 달 만에 주가는 7만 원대에서 8만 원대로 올라섰다. 이어 D램 수급 불안으로 반도체 가격 강세가 예상보다 오래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자 주가는 이달 들어 9만 전자를 넘어 10만 원대까지 치솟았다. 국내외 증권가들은 반도체 산업이 전례 없는 초호황을 맞았다고 입을 모았다.
삼성전자의 재평가를 이끈 핵심 요인은 AI 확산이 촉발한 반도체 공급 체계의 변화다. 과거 반도체 경쟁이 미세 공정 기술력 중심이었다면 AI 시대에는 안정적인 공급 능력과 생산 대응력이 새로운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래픽처리장치(GPU)와 HBM, D램, 패키징, 파운드리 단 한 공정에서라도 병목이 발생하면 제품 출하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메모리, 파운드리, 첨단 패키징을 모두 자체 수행할 수 있는 수직 계열화 역량을 보유한 삼성전자는 글로벌 빅테크의 공급망 전략에서 핵심 파트너로 부상했다. 실제 엔비디아와 테슬라 등 주요 기업들이 공급망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삼성전자와의 협력을 확대하면서 삼성전자는 ‘기술 추격자’에서 ‘AI 반도체 공급망의 해결사’로 자리매김하는 모습이다. 다만 빅테크 기업들의 투자 부담이 커질 경우 내년 중반 이후 메모리 케펙스(시설 투자) 모멘텀이 둔화될 가능성은 경계해야 한다.
이에 외국인투자가들도 삼성전자에 잇딴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외국인은 6월부터 이날까지 삼성전자 주식 13조 888억 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8개월 연속 총 9조 원 이상을 순매도했던 것과는 정반대 흐름이다. 단일 종목 기준 이례적인 매수 규모로 제프리스 등 글로벌 증권사들도 잇따라 삼성전자를 ‘최선호주’로 제시했다.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가 여전히 저평가돼 있다고 평가했다. 고태봉 iM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마이크론 등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AI 프리미엄을 반영하며 밸류에이션(가치 평가)이 급등했지만 한국 반도체주는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며 “삼성전자는 AI·HBM·레거시 반도체 모두에서 수요를 흡수할 수 있는 구조로 2026년 상반기까지 실적 모멘텀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난 1~2년간 글로벌 메모리 업체들이 HBM 증설에 집중하느라 범용 D램과 낸드 증설을 사실상 미뤄왔다”며 “이런 상태에서 AI 서버 확산으로 범용 메모리 수요가 폭발했지만 공급이 따라가지 못해 재고가 빠르게 소진되고 가격 상승 압력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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