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케미칼(011170)과 HD현대케미칼이 대산 석유화학설비를 통합하기로 하면서 정부의 강력한 구조조정 의지에도 지지부진했던 국내 석유화학업계 재편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두 기업 모두 손실과 위험을 안고 선제적으로 나선 만큼 정부와 금융권 등에서 필요한 지원이 나오지 않으면 여수와 울산 석유화학단지 내 업체들의 자율구조조정마저 뒷심을 발휘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이 충남 대산 석유화학단지 내 나프타분해시설(NCC)을 통합해 생산량을 일부 줄이는 내용의 합의안을 마련, 이르면 다음 주 정부에 보고할 예정이다. 두 회사가 합의안을 정부에 보고한 뒤 실제 통폐합이 추진되면 국내 석유화학업계의 자율구조조정 1호가 되며 설비 통합이기는 하지만 2016년 롯데그룹의 삼성 화학사업 인수(약 3조 원)를 능가하는 빅딜로 기록될 것으로 전망된다.
양 사 간 설비 통합 방식은 롯데케미칼이 대산 공장 내부의 NCC 설비 등을 현물출자 방식으로 HD현대케미칼 측에 이전하고 HD현대오일뱅크 측은 현금출자 등의 방식으로 합작사 지분을 재조정하는 것으로 귀결됐다. 현재 HD현대케미칼은 HD현대오일뱅크가 지분의 60%, 롯데케미칼이 40%를 각각 보유하고 있는데 새로운 합작사는 양 사 지분을 비슷한 수준으로 만들어 양측 설비를 통합 HD현대케미칼이 운영하게 된다.
양 사는 신규 합작사의 지분을 50대50으로 양분하는 방식을 선호하지만 향후 경영 상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만큼 어느 한 쪽의 지분을 51%로 바꿔 경영 효율성을 높이는 것도 막판 조율 중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석화업계 내부에서는 여천NCC 사례와 같이 지분이 동등할 때 의사 결정이 더디고 힘들어질 수 있다는 점을 이전부터 제기해왔다”면서 “정유사를 갖고 있는 HD현대그룹이 1주라도 더 지분을 갖는 방식이 효과적이며 구조조정 방향과도 일치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HD현대 측은 지분 조정 등이 최종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두 회사가 선제적으로 합의안을 만들었지만 실제 통폐합이 진행되려면 적잖은 시간과 진통이 예상된다. 실제로 공정거래법에는 기업결합으로 시장점유율 합계가 해당 분야에서 1위가 되는 등 시장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기업결합은 금지하고 있다. 이에 대한 예외적 조치가 빠르게 적용돼야 통폐합이 속도를 낼 수 있다.
아울러 이번 합의안에 두 기업은 정부를 비롯한 금융권에 대한 지원 요구 사항도 함께 담을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를 조율해 확정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이전부터 석화산업 구조조정 중 발생하는 매각 등에 따른 차익에 대해 과세를 줄이거나 없애 달라는 요구가 있었고 스페셜티 전환에 필요한 연구개발비 등과 관련한 세액 공제 요구도 있었다”며 “HD현대케미칼과 롯데케미칼이 첫 번째 구조조정안을 만들었지만 정부 지원이 없다면 추가 조정안을 내놓을 수 있는 기업은 많지 않다”고 평했다.
롯데케미칼과 HD현대가 예상보다 빠르게 합의에 이르면서 국내 경쟁 석화업체들은 다급해진 모습이다. 눈치 보기로 구조조정을 계속 미루다가는 본보기로 금융 지원 등이 끊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내 석화 단지 중 가장 큰 여수에서는 LG화학(051910)과 GS칼텍스 간 설비 통폐합과 관련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 이후에 최근 진전된 내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설비를 갖춘 여천NCC 역시 한화와 DL 간 가격 협상과 관련해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고 감축안은 이제 논의되기 시작하는 단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 역시 SK와 대한유화(006650) 간 논의에 에쓰오일이 테이블에 앉기는 했지만 의미 있는 진전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롯데케미칼의 경우 정부가 구조조정을 독려하기 전인 지난해부터 HD현대 측과 협상을 해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빠르게 합의안을 준비할 수 있게 됐다”며 “다른 기업들은 올 들어 겨우 협상을 시작한 만큼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연말로 시한을 정했지만 사실상 11월이 구조조정 방안을 내놓을 ‘데드라인’이 될 것으로 본다. 기업들이 합의안을 제출하고 정부가 이를 검토한 다음 지원책 등을 마련해 최종 방안을 내야 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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