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86%가 현행 대체조제 제도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대다수 의사들은 현장에서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는 대체조제가 성분명처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지난 9월 29일부터 10월 19일까지 3234명의 회원 참여로 진행한 자체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 이 같이 나타났다고 23일 밝혔다.
성분명처방은 의사가 의약품의 상품명 대신 약물의 성분명으로 처방하는 제도다. 예컨대 '타이레놀'(상품명)이 아닌 '아세트아미노펜'(성분명)을 처방전에 써주는 식이다. 현행법상 약사는 의사가 처방전에 써준 상품만 환자에게 조제해야 한다. 약국의 의약품 재고 상황과 가격, 제형 등을 고려해 조제할 수 있게 되면 약사의 전문성과 자율성이 크게 확대되는 만큼, 약사단체는 성분명처방 도입을 적극 주장해 왔다. 현재는 의사가 처방한 의약품을 약사가 동일 성분, 함량, 제형을 가진 다른 회사의 의약품으로 바꿔 조제하는 '대체조제'가 의사의 사전 동의를 전제로 허용되고 있다. 일부 예외적인 경우엔 사후 통보도 가능한데, 대체조제 내용을 즉시 환자에게 알리는 게 원칙이다. 사전 동의나 사후 통보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1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 벌금, 업무정지에서 최고 면허취소까지의 행정처분에 처한다.
의협에 따르면 이번 설문에서 응답자의 95.7%가 대체조제 제도가 성분명 처방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했다. 약사가 사전 동의나 사후 통보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형사처벌이나 행정처분 대상이 된다는 사실도 55.9%가 모르고 있었다고 전했다. 실제 사전 동의나 사후통보가 없는 경우 실제로 보건소 등 관계기관에 통보 등 조치하는 경우는 2.4%에 그쳤고, 별도 조치를 하지 않는 경우는 36.1%였다.
의협은 "법률을 개정해 불법 대체조제 처벌을 강화하고 정부와 협의해 행정처분을 강화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며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법적 대응 가이드라인 제작, 불법 대체조제 신고 활성화 방안 마련, 관계기관 협의체 구성 등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의협이 이 같은 조사 결과를 공개한 건 야당이 발의한 '성분명처방’ 의무화 법안과 관련이 깊다. 약사단체를 필두로 국회에서 수급불안정 의약품의 성분명 처방을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대두되자 의료계는 발칵 뒤집혔다.
앞서 장종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수급 불안정 의약품을 지정할 경우 의사가 해당 의약품을 처방할 때 상품명이 아닌 성분명을 기재하도록 의무화하는 의료법∙약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의협은 "동일 성분이라도 임상 반응은 다를 수 있고, 특히 소아·고령자·중증질환자 등의 경우 치명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지난 17일에는 최근 의협 내부에 신설된 불법 대체조제 신고센터를 통해 접수된 사례 중 명백한 위법 정황이 확인된 약국 2곳에 대해 서울경찰청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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