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 가을 서울 성동구의 역세권 9년 차 전용면적 84㎡ 아파트를 구입한 J 씨. 당시 5억 7000만 원의 전세를 끼고 7억 원에 이 아파트를 구입한 그는 요즘 걸핏하면 해외여행을 다닐 정도로 여유 있는 삶을 누린다. 어느새 이 아파트의 시세가 16억 원 이상, 전세가는 약 8억 원으로 올라 사실상 돈 한 푼 안 들이고 집주인이 됐기 때문이다. 그가 이보다 한참 앞서 투자했던 인근 지역의 노후 주택은 올해 새 아파트로 바뀌며 전용 84㎡ 호가가 무려 28억~29억 원에 달한다. 당시 그는 박근혜 정부에서 이른바 “빚 내서 집 사라”는 식의 경기 부양책을 펼친 데 이어 문재인 정부도 부동산 폭등기였던 ‘노무현 정부의 시즌 2’가 될 것이라고 판단해 수없이 갭투자에 나섰고 지금도 투자 기회를 엿본다.
사실 주변에서는 아파트 갭투자와 재개발·재건축 투자에 성공해 ‘일확천금’을 거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심지어 한 지인은 지난 30여년간 강남을 위주로 부동산에만 올인해 수백억 원대의 자산을 일구며 자녀들을 조기 유학 보내기도 했다. ‘부동산 공화국’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만큼 성실하게 근로소득을 올리면서 전월세를 사는 서민들이나 지방 거주자들의 박탈감은 클 수밖에 없다. 또 10·15 대책으로 3중 규제(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토지거래허가구역)에 묶인 서울 등 수도권의 소외 지역 주민들의 볼멘소리도 크다.
전문가들은 서울 등 수도권의 경우 물가 앙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똘똘한 한 채’ 수요와 1인 가구 증가, 공급 부족, 풍부한 유동성, 저금리·고환율, 교통망·공원 확충으로 ‘부동산 불패 신화’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한강 변을 중심으로 주택 가격이 급등하면서 수도권 내에서도 양극화가 심화할 것으로 본다. 물론 저성장 기조 고착화에다가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지고 인구 감소의 충격이 가세하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일부 지적도 있지만 그다지 피부에 와닿지 않는 분위기이다. 이러다가는 자칫 현 정부도 ‘문재인 정부 시즌 2’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다소 성급한 우려마저 나온다. 다만 그때와 달라진 점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최근 정부의 보유세 인상 시사에 대해 정치적 득실을 따져 선 긋기에 나섰다는 점이다.
수십년간 물가 인상률의 몇 배에 달하는 부동산 가격 상승이 이뤄져서는 청년층과 무주택 서민뿐 아니라 나라에 희망이 없다. 이제는 부동산 정책에서 정권 따라 냉·온탕식이 아닌 긴 호흡으로 일관성을 갖고 정공법으로 대처해야 국민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도시 외곽의 신도시 건설 같은 기존 접근법에서 벗어나 과감히 재개발·재건축 활성화를 추진하되 서민층을 고려해 임대주택 비중을 늘리도록 해야 한다. 요즘 신규 아파트를 보면 임대주택보다 공원이나 주차장으로 기부채납하는 경우가 부쩍 늘어난 게 현실이다. 외국인에 대해서도 내국인과의 형평성과 국가 간 상호주의에 입각해 일부 규제할 필요가 있다. 똘똘한 한 채를 우대하고 다주택자를 죄악시하는 태도도 지양해야 한다. 또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세금 문제도 보유세를 급격히 높일 경우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전가한다는 점에서 점진적 인상을 모색하되 거래세는 그만큼 낮춰야 매물을 끌어낼 수 있다. 물가통계를 계산할 때도 미국·영국·일본 등 해외처럼 주택 매매가를 반영해야 실효성 있는 정책이 나올 수 있다.
무엇보다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한 것처럼 생산적인 자본시장으로 돈의 흐름을 바꿔놓는 ‘머니 무브(money move)’를 꾀하는 게 중요하다. 현 정부 들어 단계적 상법 개정을 통해 외국인 투자 등을 유도하며 증시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자산 시장에서 부동산 편중 현상의 해소는 요원하다. 더욱이 머니 무브를 통해 미래 성장 동력을 점화할 벤처·스타트업들의 돈 가뭄을 해소하는 게 급선무이지만 윤석열 정부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정권의 명운을 걸고 부동산 시장의 안정적 관리와 머니 무브의 성공을 통해 나라의 활로를 열 수 있을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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