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미국이 요구하는 방식대로 대규모 투자를 집행할 경우 한국이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유사한 충격에 직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미 간 무역 협상 교착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이 잇달아 강경 발언을 내놓으면서 향후 협상 국면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이 대통령은 22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통화 스와프 없이 미국이 요구하는 방식대로 3500억 달러를 인출해 전액 현금으로 투자한다면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때와 같은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상업적 합리성을 보장하는 세부 합의에 도달하는 것이 현재의 핵심 과제로 가장 큰 걸림돌로 남아있기도 하다”며 “실무급 협의에서의 제안들은 상업적 타당성을 보장하지 못해 양국 간 이견을 메우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앞서 한국과 미국은 올 7월 구두 합의를 통해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려던 25% 상호관세를 15%로 낮추는 대신 한국이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하지만 대미 투자 방안에 대한 세부적 합의까지 이르지 못했다. 한미 간의 핵심 쟁점은 투자 집행의 상업적 타당성 보장 여부다.
이에 한국 정부는 최근 미국에 무제한 통화스와프 체결을 제안한 상태다. 통화스와프는 자국의 화폐를 상대국에 맡긴 뒤 미리 정한 환율로 상대국의 통화를 빌려오는 방식이다. 통화스와프 체결 시 원화를 발행해 달러로 전환한 후 펀드를 조성할 수 있고 외환 보유액을 쓰더라도 원·달러 통화스와프를 통해 외환 부족 사태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 정부의 통화스와프 개설 요구를 수용할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일본과 사정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한국은 7월 미국과 무역협정을 체결한 일본과 다르다”며 “일본은 한국의 외환보유액인 4100억 달러의 두 배 이상을 보유 중이고 미국과 통화스와프도 체결 중”이라고 덧붙였다. 무제한 통화스와프 체결 제안을 미국 측이 하루빨리 수용할 것을 촉구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혈맹 관계인 두 나라 사이에서 최소한의 합리성은 유지될 것이라 믿는다”며 “이 불안정한 상황은 가능한 한 조속히 끝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이번 인터뷰에서 이 대통령은 이달 초 미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공장 건설 현장에 대한 이민 단속 사건에 대해서도 의견을 내놓았다. 300명 이상 한국인 근로자가 체포된 사건과 관련해 그는 “의도적인 행위라고 보지 않는다”면서도 “미국은 이번 사건에 대해 사과했으며 합리적인 조치를 마련하기로 합의했고 현재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한 “이번 사안으로 굳건한 한미 동맹이 훼손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미국과의 안보 협력에는 큰 이견이 없음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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