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 경영’이 가구·리빙업계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작은 목공소, 오래된 전구 공장 등에서 출발한 1세대 사업이 2세대의 손을 거치며 리브랜딩에 성공한 결과다. 오랜 업력에 대한 신뢰와 함께 감각적이고 세련된 디자인을 강점 삼아 2030세대 사이에서 새로운 팬덤까지 만들어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27일 가구·리빙업계에 따르면 수십 년의 업력을 자랑하는 중소기업들이 2030 소비자들로부터 인기를 누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목제가구 브랜드 ‘언커먼하우스’는 아빠와 딸이 대를 이어 만드는 가구회사로 유명세를 얻고 있다. 정영은 대표가 40년간 운영하던 목공소를 접은 아버지를 설득해 2017년 언커먼하우스 문을 열었고, 아버지 정명희 고문은 언커먼하우스 제작소에서 제작소장으로서 가구를 직접 만든다. 정 대표는 “외국에는 7대째 이어오는 리빙 브랜드가 있을 만큼 대물림 브랜드가 많다”며 “언커먼하우스는 만드는 사람 뿐 아니라 사는 사람도 ‘대를 이어’ 쓸 수 있는 가구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철제가구 브랜드 ‘레어로우’는 이 분야 대표주자다. 을지로에서 철물점을 운영하던 할아버지와 경기도에서 철제 가구를 납품하던 아버지의 대를 이어 양윤선 대표가 2014년 창업했다. 해외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돌아온 양 대표가 아버지 공장에서 일하다 ‘가정용 철제 가구’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감각적인 색감, 신선한 소재로 인기를 끌며 양 대표는 ‘철의 여왕’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조명 업계에서는 2세 경영이 이미 정착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다. 1세대가 위탁 생산과 공장 운영에 상대적으로 집중했다면 2세대는 디자인과 브랜딩에 주력해 MZ세대 취향을 사로잡았다. ‘스노우맨’ 조명으로 뉴욕·도쿄·홍콩의 모마(MoMa) 디자인스토어에 입점한 일광전구는 1962년 국내 최초의 백열전구 회사로 설립돼 현재 2세가 가업을 잇고 있다. 1973년 삼일조명에서 시작해 리브랜딩한 ‘라이마스’, 1981년 창성조명으로 출발한 ‘코램프’ 등도 비슷한 경로를 걷고 있다.
2세 경영 시대를 주도하고 있는 회사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온라인을 기반으로 인기를 끌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인테리어 플랫폼 오늘의집에서 레어로우 상품을 스크랩한 이들은 약 16만 명에 달한다. 레어로우 스타일링샷도 약 1만8000여건에 이른다. 언커먼하우스(약 9만4000명) 일광전구(약 5만4000명) 등도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오늘의집 관계자는 “디자인이 감각적이면서도 오래된 업력과 품질에 대한 신뢰가 합쳐져 유저들의 관심을 받는 회사가 점차 늘고 있다”며 “식품 분야의 삼진어묵이나 태극당처럼 전통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취향을 더한 브랜드가 리빙 분야에서도 앞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구·리빙 업계에서는 2세 경영자들이 침체된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는 모멘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높다. 쇼파 전문 브랜드로서는 이례적으로 대규모 팬덤을 확보하며 급성장한 에싸 같은 사례가 추가로 탄생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박경분 자코모 부회장의 장녀 박유진 대표가 2019년 창업한 에싸는 국내에서 다소 생소했던 패브릭 소파로 MZ세대 마음을 공략해 힙(Hip)한 브랜드로 단숨에 떠올랐다. 업계 관계자는 “오래된 공장을 기반으로 한 2세 경영이 젊은 세대에게는 오히려 신선한 브랜드 경험으로 다가오고 있다”며 “매트리스와 쇼파 등에서 이미 선례가 있듯 가업 계승 기업이 새로운 고객 창출의 주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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